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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용비리 단속 강화하는데…윗선 지시 따른 조력자만 처벌 강화?
-부정청탁자 처벌 쉽지 않아
-윗선 지시 따랐다면 처벌 불가능?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금융업체 등에서 대규모 ‘채용비리’가 잇따라 폭로되면서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경찰청은 1일부터 올해 말까지 지자체, 공기업 등 1100여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인사 및 채용비리 특별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채용비리 만연해 있다고 하지만 처벌은 만만치 않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채용비리 혐의자는 법적으로 주로 ‘업무방해죄’, ‘(공ㆍ사)문서 위조죄’로 처벌된다. 부정한 청탁을 통해 자격이 없는 사람을 입사시켜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법은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한 사람에게 업무방해죄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문서를 위조한 경우엔 10년 이하 징역, 사문서 위조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얼핏 보면 요즘 채용비리 사범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는 추세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채용비리가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부각되면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대신 징역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고법은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입직원 채용 비리를 저지른 혐의(업무방해)로 재판을 받은 박철규(59) 전 중진공 이사장과 권모(54) 전 운영지원실장에 대해 징역 10월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3년 하반기 중진공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측의 청탁을 받고 서류를 조작해 최 의원실 인턴 출신 황모 씨를 합격시킨 혐의를 받았다. 황 씨가 서류전형에서 합격권에 미치지 못하자, ‘학교별점수’, ‘어학점수’ 등 계량 항목 점수를 조작해 최고점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황 씨를 서류전형 합격자에 포함시켰다.

9월엔 서울남부지법이 임영호 전 국회의원의 아들을 특혜 채용한 혐의(업무방해)로 김수일(55) 금융감독원 부원장에게 징역 1년, 이상구(55) 전 부원장보에게 징역 10월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2014년 6월 금감원 경력 변호사 채용 과정에서 서류전형에 떨어진 임 전 의원 아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역시 서류 평가 기준을 변경한 혐의를 받는다. 변호사 경력 없이 이제 막 로스쿨을 졸업한 임 전 아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변호사 재직 경력 우대조건을 없애고, 금융기관 수습 경력 우대 조건을 신설하는 등으로 배점을 달리해 결국 합격시켰다.

재판부는 “수많은 입사지원자들의 공정한 경쟁기회를 박탈하고, 속칭 연줄로 정규직을 취득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과 관행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공정한 채용 절차가 이루어 질 것으로 믿고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겨준 허탈감과 상실감도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채용비리 사건에서는 하지만 이를 요구한 청탁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대가성을 밝히기 어렵다면 형사처벌로 이어지긴 더 어렵다.

예컨대 앞선 사례의 금감원 채용 비리 건에서 채용비리를 실행한 2명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부탁하거나 지시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최모 전 원장과 임 전 의원은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두 사람이 개입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법적용이 가능한 건 업무방해죄 적용 기준이 애매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업무방해죄는 채용 담당자가 정상적인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거나 속였을 때 성립한다. 반대로 채용 실무자가 알아서 ‘윗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면 실제 청탁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초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차준일 전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이 대표적 사례다. 차 전 사장은 지난해 신규직원 채용심사에 개입해 특정 응시자의 점수조작을 지시하는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대전지방법원은 “면접관의 업무활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면접위원들이나 중간 실무자들이 알아서 부정을 저질렀고, 차 전 사장이 그들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채용비리로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는 강원랜드, KAI 등 다른 공공기관도 대부분 이같은 쟁점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시한 윗선은 단순히 ‘좋은 인재를 추천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검찰은 이를 반박할 자료를 들이대지만 대가성 등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처벌이 쉽지 않다. 채용비리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게 만만치 않은 이유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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