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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생 일상어 된 혐오의 ‘충’
맘충·틀딱충·급식충·학식충…
비하 표현인데… “뭐 어때서”
자신 칭해도 거부감 없이 확산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41ㆍ여) 시는 최근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뱉은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를 향해 “할아버지도 틀니 딱딱 소리가 나느냐”고 말하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나중에서야 의미를 알게 된 김 씨는 혼까지 냈다. 그러나 아들은 “스스로 급식충이라고 말하는 것이 왜 잘못됐느냐”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벌레라는 표현이 나쁘다고 가르쳐봤지만, 주위에서 모두 쓰고 있다며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혐오 표현을 쓰면서도 혐오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급식체’라는 신조어 틈에 섞여 자신도 모르게 혐오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쓰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자신을 지칭할 때도 혐오 표현을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중학생 이모(15) 군은 자신을 당당히 ‘급식충’이라고 표현한다. 급식충은 학교를 다니며 급식을 먹는 학생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군은 주변에서도 급식충이라는 표현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군은 “누군가 나를 급식충이라고 불러도 별다른 거부감은 없다”며 “우리 세대를 설명하는 표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어린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세대 혐오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부모 세대를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맘충’이나 ‘애비충’같은 표현에서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충’도 이미 인터넷 등에서는 식상한 표현으로 통하고 있다. 심지어는 젊은 층 안에서도 10대와 20대가 나뉘어 서로 ‘급식충’과 ‘학식충’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른바 ‘○○충’은 벨레(蟲)라는 표현을 덧붙여 특정 대상에 대한 비하의 뜻을 담고 있다. 시작은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베충’이었다. 당시에는 강한 혐오의 뜻을 담은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한 집단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쓰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이명서 한국사회심리연구원 연구사는 “이들이 집단을 표현하고 규정하는 방법으로 ‘○○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는 것은 맞다”며 “다만, 벌레라는 어원을 생각했을 때 이를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면이 있어 올바른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충’과 같은 혐오 표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학내에서 벌레 등을 언급하는 등 차별 발언을 금지하는 학생조례까지 만들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조례안은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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