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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중기획-작은 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어린이·임신부 옆에서도 ‘뻐금뻐금’…간접흡연 지옥 한국
실내서 쫓겨난 흡연자들 거리로 진출
트인 공간 비흡연자에겐 또다른 고통
전문가 “에티켓교육과 금연지원 필요”

정부의 경고문구와 그림 도입 등 강력한 금연 정책으로 19세 이상 전체 흡연률이 지난 2012년 25%로 나타내는 등 점차 흡연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흡연자들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행태가 지속되고 정부와 지자체가 흡연자와 금연자를 분리할 수 있는 흡연공간을 확보하는데 소홀하면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시민들은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간접흡연의 폐해에 노출되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 9조 제 4항에 따라 다수의 사람이 이용하는 빌딩이나 공공기관,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의 통행이 잦은 어린이집과 각급 학교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3월부터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거주 세대 중 반 이상이 복도나 계단, 엘리베이터 및 지하주차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에게는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처럼 흡연자를 실내에서 내쫓는 금연정책이 시행되면서 실내에서의 간접흡연율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3년 직장 내 실내에서 다른 사람이 피우는 담배연기를 맡았다는 응답은 남자 57.2%, 여자 38.7%에 달했지만 2015년에는 각각 36.2%, 18.5%로 감소했다.

그러나 담배를 피울 곳을 찾아 흡연자들이 실외로 나오면서 도로의 더 많은 시민들이 간접흡연의 공격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2012년 보건복지부가 서울시민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장소로 실외 공공장소가 86.1%로 가장 많이 꼽혔다.

한국에서는 금연구역 확대에 발맞춰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흡연실이 생겨나고 있지만 상당수 흡연자는 비좁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흡연실을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때문에 비흡연자들과 충돌도 빈번하다.

실외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건강이나 불쾌함은 아랑곳 하지 않는 ‘무뢰한’도 많았다. 지난 8일 저녁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근처 공중전화 박스 안은 희멀건 연기로 가득 찼다. 70대 남성 김씨가 공중전화 박스를 흡연부스 삼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김씨가 내뿜은 연기는 공중 전화 박스 밖으로 흘러 나와 주변 인도로 퍼지고 박스 안 바닥은 A씨가 떨군 담뱃재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김씨는 “예전에는 버스에서도,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마음껏 피웠다”며 “공중전화를 요즘 누가 찾나. 사람만 없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핏대를 세웠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은 불쾌함을 넘어 공포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직장인 정모(28)씨는 “버스정류장 근처는 금연지역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 옆을 지나 회사에 도착하면 ‘너 담배 피우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뭐라고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더 당당하게 피우는 모습이 얄밉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시에 거주하는 직장인이자 임신 3개월 차인 서모(30)씨는 “광화문 회사 근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면 식당 옆에서 사람들이 내뿜는 연기 때문에 너무 무섭다“면서 “임산부가 지나가도 신경도 안 쓰니 마스크를 준비해야 할 정도”라고 속상해 했다.

실제로 간접흡연은 직접흡연 못지 않게 건강을 위협한다. 간접흡연은 국제암연구기관(IARC)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국내 폐암 퐌자 25~30%가 비흡연자인데 이들의 주요 발병원인으로 간접흡연이 지목된다. 간접흡연자가 주로 흡입하는 담배연기는 직접흡연자가 흡입하는 담배연기에 비해 니코틴은 3~5배, 타르는 3.5배, 일산화탄소는 5배 이상 많다. 이들 물질은 폐암 뿐 아니라 심근경색, 천식 등 수십가지 질환을 유발한다.

담배를 피운 사람의 옷이나 머리카락 등에 묻은 각종 화학물질과 냄새가 비흡연자에게 옮겨지는 ’3차흡연’은 흡연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도서관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모(26) 씨는 “옆자리에 막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사람이 앉으면 머리가 띵하다”면서 “밀폐된 공간이고 옆사람과 딱 붙어있는데도 담배 냄새를 풍긴다면 그것도 간접흡연 아니냐”며 되물었다. 그는 “최근에는 담배를 피운 사람은 환기를 하고 들어오라는 안내문을 붙였지만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성규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사는 “흡연 에티켓을 법으로 하나하나 정하고 지키라고 할 수는 없다”며 “흡연 공간과 금연 공간을 엄격히 나눠 비흡연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흡연 습관을 길러주는 에티켓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의 경우 흡연자와 금연자의 비율이 큰 차이가 없어 갈등이 벌어지는 만큼 흡연자들의 금연을 적극 도와 흡연률을 낮추면 간접흡연으로 인한 갈등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고 제언했다.

원호연·정세희 기자/why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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