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위협이 고조될 때 국민을 안심시키는 강력한 논리 중 하나가 국내 거주하는 미국인 민간인들의 동태에 특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보 상황이 위태롭다면 왜 국 내 미국인들은 조용하냐?’는 것.
실제로 다수의 안보 전문가들은 국내 안보 위기가 고조될 때 ‘국내 미국인 민간인들을 보라’는 논리를 시전했다. 지난 4월 미국의 북폭(북한 폭격)설이 힘을 받을 때 특히 그랬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에 거주하는 20만명의 미국인 보호 때문에 미국의 북폭은 비현실적이라고 전망했다.
공군 서울공항에서 열리는 항공우주방산전시회에 F-22와 F-35A, B-1B 전략 폭격기 등 미군의 최첨단 항공전력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같은 장소에서 미 공군 조기경보기(E-3 AWACS)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그러나 미국은 지난해 말 국내 거주 미국인들을 상대로 은밀히 ‘커레이저스 채널’ 훈련을 7년 만에 실시한 터였다. 이 훈련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발한 상황을 상정해 주한미군이 최우선 순위를 두고 실시하는 미국인 민간인 대피 작전이다.
‘국내 미국인 민간인들의 동태가 조용하니 안심하라’는 논리 뒤에서 미국인 민간인들은 커레이저스 채널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던 것.
▶7년만의 미국인 대피훈련이 정기훈련?=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폭설이 힘을 받자, 지난 4월 10일 통일부가 나서서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한 것 또한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당시 통일부는 “미국은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고 했고, 우리 정부는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등 도발을 지혜롭게 해결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재강조했다.
이를 놓고 6.25 때도 정부가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방송한 사례가 회자될 정도였다.
이번에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커레이저스 채널 실시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지난 16일 보도자료에서 23일 시작되는 미국인 민간인 대피 훈련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훈련이며, 현 안보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혹을 보내는 시선은 여전하다.
미국대사관은 “비전투원 소개 작전(NEO) 이라 불리는 위기관리 훈련은 특정 안보 상황과 무관하다”며 “미국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에서 위기관리 훈련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시민들의 철수와 관련해 발생한 소문, 언론기사, 허위 소셜미디어 경보 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며 관련 의혹에 대해 적극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대사관이 북폭작전 결정권자도 아닌데 뭘 알겠느냐. 미국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동정론마저 나온다.
미국대사관은 “한국에 거주중인 미군 가족들도 (커레이저스 채널에)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그 외 미국 정부 공무원들과 대한민국 긴급 구조대원들이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명령과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주한미군 소속 군인들이 커레이저스 채널 훈련에 상부 지시나 허가 없이 자발적으로 참가한다는 논리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6.25가 터져도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던 정부…반론도=미국대사관은 또 “한 나라에서 미국인들이 철수하느냐, 마느냐는 미국 국방부, 미국 정부소속 기관들과 상의해 미국 국무부가 최종 결정한다”며 “철수 결정은 미국 정부 공식채널을 통해 통보되며, 철수 절차는 한국 관계당국과 연계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미국대사관은 실제 철수여부에 대해 알 수 없는 위치이며, 결정하는 입장도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미국대사관은 미국인의 한국 피난과 관련된 소문이나 언론 기사 등의 정보에 대해 확인하려면 주한미국대사관, 주한미군 등의 공식 홈페이지를 이용하라고 당부했다.
물론, 미국대사관이나 주한미군 홈페이지가 기밀사항에 해당되는 미국인의 한국 피난 관련 미국 정부의 결정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홈페이지에 공개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메릴랜드 주 앤드루 공군기지에서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한편, 핵무기 투발이 가능한 미국의 전략무기가 속속 한반도로 전개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중국, 일본을 순차적으로 방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일본에 도착해 2박, 7일 한국 1박, 중국 2박의 일정으로 아시아를 순방한다.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강도 높은 설전을 벌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1박하는 11월 7일은 미국 대통령 경호팀에게 역사상 긴장 강도가 가장 높은 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중일 3국 중 일본과 중국에서는 2박 일정, 한국에서만 유독 1박 일정으로 계획을 짠 것도 미 대통령 경호상의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중국과 일본 2박, 한국 1박 일정을 짠 것에 대해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9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첫 방한 당시에는 중국 3박, 한국과 일본 1박 일정이었고 당시 청와대 역시 “체류기간보다 성과가 중요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저녁 7시45분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오산 주한미군공군기지에 도착,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 프레지던셜 스위트룸(330㎡, 1일 숙박료 800만원 상당)에 묵었다. 오바마 대통령 경호작전에는 미 백악관 경호팀, 우리 군, 경찰, 청와대 경호처 등 총 1만3000여명이 투입됐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방한에서 경호상의 이유로 해상의 미해군 선박에서 숙박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우리 군과 주한미군이 참가하는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지난 16일부터 시작돼 ‘떠다니는 군사기지’ 미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 세계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 그외 수십여척의 이지스함, 핵잠수함 등이 투입된다. 군 당국은 이에 대해 “정기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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