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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후 첫 명절 맞는 새내기 3인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취업 선물’ 안고 고향길…“부모님, 앞으로 잘 할게요…”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청춘은 만물(萬物)이 푸른 봄철’이라 했는데, 대한민국 청춘들은 어느 때보다도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 때문입니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기준 15∼29세 청년실업률은 9.4%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습니다.

어려운 와중에 취업에 성공한 3명의 청년들이 모처럼 귀성길에 오릅니다. 세 사람 모두 아직 취업을 위해 고생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자신들의 이야기가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무거운 가방을 매고, 그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죄인처럼 공부했다며 “끝까지 해보자, 희망은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이들의 취업 성공기를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익명을 원하는 성찬 씨만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편집자주> 

추석연휴를 앞둔 29일 앞두고 재직증명서를 들고 고향 집을 향하는 새내기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제 명절마다 듣던 “취업은 했냐”는 친척들의 질책성 질문 대신 축하를 받을 수 있고 부모님 용돈도 속시원하게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최근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방준규(31)씨가 백화점에서 추석선물을 고르고 있는 모습.   정희조 기자/checho@

-백수탈출 서른한살 김성찬씨
명절때마다 이핑계 저핑계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번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하루종일 누워 TV 보고싶어


▶서른 한살 백수 탈출한 김성찬(31ㆍ가명)씨가 보내는 편지=길고 긴 2년이었습니다. 백수생활을 끝내면 무조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마음은 복잡합니다.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냈다는 해방감 한편으로, 사람 노릇 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나 허무함도 듭니다. 지난 2년, 거창한 걸 꿈꾸며 이 악물고 버틴 게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만큼 벌고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 이 작은 행복을 얻는 게 이토록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이제야 어깨 펴고 찾아뵐 수 있게 됐습니다. 명절마다 토익 따야한다, 알바해야 한다며 찾아뵙지 못했죠. 계속 고배를 마시며 마음이 약해질 때면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짠한 눈빛으로 토닥여주시면 마음만 약해질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거실에 하루 종일 누워 TV도 보고 싶습니다. 다시 밝고 씩씩한 큰 아들로 돌아갈게요.

합격의 문턱 앞에서 넘어질 때마다, 열심히 살았는데 도대체 왜? 답 없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습니다. 자기소개서 전형에서 떨어질 때면 제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푼 수험서만 30권이 훌쩍 넘더군요. 60군데 넘는 회사에 지원하고 보통 최종면접까지 3~4개의 관문이 있었으니 수도 없이 떨어진 셈이지요. ‘될 때까지 해보자’라는 패기도 잠시, 정말 이 싸움이 끝이 나긴 할까 두려움에 잠 못 이룬 날도 많았습니다.

더 이상 떨어져도 상처도 안 받을 만큼 단단해졌을 때쯤 합격통지는 조용히 날아오더군요. 탈락에 익숙해 믿겨지지도 않았어요. 아버지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을 때야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 졸이셨을지…. 주변에서 큰 아들 뭐하고 사냐는 말 들을 때마다 속상하셨죠? 2년 넘게 취업 준비하는 서른 한살 아들. 어떻게 포장해도 불효자인데 아무 말 못하셨을 거 눈에 선합니다. 이제 동창회 가셔도 아들 원하는 곳에 취직했다고 당당하게 말씀 하세요.

며칠 전 어머니께서 “이제 좋은 사람 만나 결혼만 하면 발 뻗고 자겠다”하셨죠? 오매불망 자식 걱정만 하시는 불쌍한 엄마. 앞으로 잘 할게요. 이제 건강만 챙기면서 지내세요. 빨리 집에 가서 부모님 웃는 모습 보고 싶습니다. 추석 날 뵙겠습니다. 

-제주도 선생님 박아람씨
우리딸 인생속도 늦을지언정
마음먹으면 잘 할 거라는
새벽녘 엄마·아빠 말씀 생생…
첫월급, 해외여행 준비했어요

▶제주도 선생님이 된 박아람(28ㆍ여)씨가 가족들에게 보내는 이야기
=이번 추석은 제가 제주에서 선생님이 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에요.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창문 너머 한라산이 듬직하게 서 있고, 왼쪽 창문 너머에는 햇빛에 반짝이며 일렁이는 바다가 보입니다. 교단에 선 것이 아직도 꿈만 같아요. 작년 추석만 해도 공부하느라 잘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올해는 부모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그거 아세요? 제가 임용시험 준비할 때 엄마, 아빠께서 새벽에 하시는 말씀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 딸은 또래 친구들보다 인생의 속도가 조금 늦을지언정 한 번 마음먹고 하면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잘하니까 난 우리 딸 믿어”라고 하셨죠. 이 말 한마디가 제게 너무나 큰 버팀목이 되었어요.

공부하는 딸 힘내라고 엄마 하고 싶은 거 참고, 먹고 싶은 못 드시고, 전기세 많이 나올까봐 찜통같이 더운 날에도 에어컨 안 틀고 버티시며 제 뒷바라지 해주셨잖아요.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제 마음이 참 많이 아팠어요. 이제부터는 소소하지만 남부럽지 않게 엄마, 아빠 하고 싶은 거 다 해드리고,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옷 모두 사드리고 싶어요.

여행을 참 좋아하시는 엄마, 아빠! 제 첫 월급으로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홍콩여행을 준비했어요. 너무나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진작 해드릴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요. 부모님이 제게 주신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차곡차곡 모은 월급으로 우리 가족 매년 해외 여행가요.

엄마, 아빠. 부족한 딸 믿어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 동생, 바쁜 언니 대신 든든한 딸 역할을 해줘서 참 고마워. 꽃처럼 사랑받고 예쁨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늘 고맙고, 사랑해.

-8년만에 졸업…회계사 정남인씨
두 수험생때문에 십여년 고생…
자매 뒷바라지 이제 끝났는데
마음 놓으시고 많이 앓으셨죠?
아리고 그저 죄송할뿐입니다

▶8년만에 대학졸업하고 회계사가 된 정남인(26ㆍ여)씨의 감사 편지=엄마, 아빠. 덥고 숨 막혔던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가을이 되었습니다. 근 십여 년간 두 수험생을 키우셨는데, 올해가 돼서야 제가 공부했던 CPA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언니에 이어 막내인 저까지, 두 자매가 직업을 갖고 나서야 부모님의 수험생활도 함께 끝이 났네요.

그런데 기쁨도 잠시, 요즘 두 분 다 계속 몸이 안 좋으셨잖아요. 연세가 드셔서 그런가 싶다가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큰 시험을 치르고 나면 꼭 다음날 몸살을 앓잖아요.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그동안 저희를 온 힘 다해 키워주시고 이제야 긴장이 풀려 몸살을 앓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립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힘든 수험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 덕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딸이라는 자부심 덕분에 나태해지기 쉬운 수험생활에도 고삐를 죌 수 있었습니다. 종일 공부만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나태해질까 틈틈이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항상 성실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을 통해 배운 삶의 방식 덕분입니다.

첫 출근을 앞두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에 잠을 설친 제 모습을 보면서 저보다 기뻐하셨던 부모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겨웠던 열람실을 8년 만에 떠나 드디어 사회로 나가는 남인이를 계속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 부모님의 자랑이 될 수 있게 노력할게요.

올해는 사회인이 된 제가 부모님을 챙겨 드리는 첫 추석이에요. 아직 첫 월급은 못탔지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홍삼세트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저의 효도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정세희ㆍ김유진 기자/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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