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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자살구조대①]“나도 얼마전까지 소방관…동료이기에 그 상처 잘 알아요”
-국내 소방관 상담건수 지난해 5087건…4년새 10배 급증
-경기북부소방본부, 동료 심리상담 위한 ‘소담팀’ 설치
-‘동료의 상담’ 공감대 커…美日도 유사 프로그램 운영

[헤럴드경제(구리)=신동윤 기자]“소방관들은 불굴의 의지로 타인의 생명을 구조하는 강인한 신체와 정신,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지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참혹한 사고현장이나 극한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속으로는 점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소담팀)도 얼마전까지 함께 불끄고 생명을 구하던 동료이기에 그 아픈 마음을 더 잘 다독이고 함께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10일)’을 앞두고 경기도 구리소방서에서 만난 박승균 소방위가 본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박 소방위는 현재 전국 최초로 전문소방상담사 자격을 갖춘 소방관들이 동료 소방관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ㆍ트라우마) 치료를 맡기 위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가 설치한 ‘소담팀’의 팀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소곤소곤 담소’와 ‘소방공무원 상담’이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소담팀에는 박 소방위를 비롯해 이숙진 소방장, 최지선 소방교 등 현직 소방관 3명이 소속돼 있다. 이들 모두 심리학 석사, 사회복지학 석사를 취득한 전문상담사다.

소담팀이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소속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특히, 소담팀은 소방공무원의 순직이나 자살사건등 소방관의 긴급상황 발생시 24시간 이내 현장으로 출동해 위기상황 스트레스해소 상담을 하고 있다. [제공=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특히, 소담팀은 소방공무원의 순직이나 자살사건등 소방관의 긴급상황 발생시 24시간 이내 현장으로 출동해 위기상황 스트레스해소 상담을 하고 있다.

박 소방위가 위기심리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0년부터.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스스로 겪었던 심리적인 아픔 때문이었다. 박 소방위는 “화재 현장이나 대형 교통사고 등이 발생한 곳에 출동하다보면 참혹한 장면을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런 상황들이 10여년 넘게 이어지며 상처로 남았다”며 “업무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삶의 고비를 만나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되는 고비를 넘겼고, 이후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동료들을 함께 구출하자는 생각에 상담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박 소방위는 자신이 겪었던 심리적 고비를 많은 동료들도 겪고 있다고 했다.

이는 수치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최근 바른정당 소속 홍철호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방관들의 정신과 병원 진료 및 상담 건수는 2012년 484건에서 작년 5087건으로 4년 새 약 10.5배 증가했다. 올해는 7월 말 기준 3898건이다. 또 2012년 이후 자살한 소방관 인원수는 2012년 6명, 2013년 7명, 2014년 7명, 2015년 12명, 지난해 6명, 올해 7월 말 기준 9명 등 총 4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소방청의 ‘소방관 심리평가 조사결과’를 보면 소방관은 연평균 7.8회 참혹한 현장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질환 유병률은 일반인보다 5~10배 높았다.

상황이 이렇지만 증상이 심하지 않은 초기 단계부터 정신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늘 안타깝다는 것이 박 소방위의 설명이다. 박 소방위는 “정신적 외상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소방관이란 직업의 특성상 평소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 정신병적인 단계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외부 강사를 통한 일회적이고 피상적인 상담보다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소방관들을 심리상담 요원으로 양성해 소방관들이 수시로 상담받고, 정신적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게 보다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소방청은 전문의ㆍ심리상담사 등이 직접 소방서를 방문해 심리장애 진단 등을 실시하는 ‘찾아가는 심리상담실’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 기준 전체 소방서 213곳 중 14%인 30곳에서만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료 상담의 효과를 알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해당 팀을 구성,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3년 시카고 소방서는 45명의 동료상담사로 구성된 ‘게이트키퍼 프로그램(Gatekeepers Program)’이란 이름의 일리노이 소방관 동료 상담팀을 구성했다. 뉴욕도 9ㆍ11 테러 전 5명에 불과했던 동료 상담팀을 100명으로 충원했다. 일본 도쿄소방청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 3월 소담팀이 전국에서 처음 소방관으로 구성된 상담팀으로 발족하게 된 데는 김일수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장의 의지도 컸다. 박 소방위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 소방업무를 책임지던 김 본부장은 이 일을 계기로 PTSD 치료를 지금까지도 받아오고 있다”며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소방관들이 제때 치료받고 보다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의지 덕분에 소담팀도 탄생했다”고 했다.

박 소방위에게는 작은 바람도 있다. 그는 “소담팀은 아직 정식 조직이 아닌 태스크포스(TF)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라며 “동료 상담의 가치가 좀 더 널리 알려져 경기북부소방본부에서 정식팀으로 발족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국 다른 소방본부에서도 비슷한 조직이 많이 만들어져 소방관 동료들의 심리건강 상태가 눈에띄게 향상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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