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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지도자의 오판은 죄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아쉬운 순간은 분명히 있다. 세계 2차 대전을 방조한 쳄벌린 영국 수상이 독일과 맺은 평화협정, 임진왜란의 피해를 그나마 최소화 할 수 있었던 사신단 보고에 대한 선조의 결정은 당시에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됐지만, 결국 더 큰 불행의 씨앗이 됐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리더들 어깨 위에 놓인 짐도 쳄벌린이나 선조 못지않게 무겁다. 밖으로는 핵과 ICBM(장거리탄도미사일)으로 폭주하는 김정은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 안으로는 현 세대의 풍요 또는 미래 세대의 부담 사이에서 오가는 재정 복지정책,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의 선 탈원전 문제까지 모두가 현 세대를 넘어 우리 자식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쳄벌린 수상과 선조의 결정적 판단이 아쉬운 이유는 사실에 대한 무지 또는 오판 때문이다. 단순히 폴란드나 오스트리아가 아닌, 유럽 전체의 점령을 노렸던 히틀러의 속내와 또 전략을 쳄벌린이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했다면, 안으로 군부의 힘이 흘러 넘쳐 밖에서 풀어야만 했던 일본의 정치 상황을 선조가 알았다면 역사 교과서는 지금과 다른 내용이 담겼을 수도 있다. 지도자의 무지, 그리고 무지가 만든 오판이 결국 유럽에서만 6000만명, 한반도에서는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물론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 또는 시대의 천재일 수는 없다. 똑똑한 리더와 성실한 국민이 만난다면 최상의 조합이 되겠지만,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에나 있을 법한 말 그대로 이상일 뿐이다. 현실은 서양의 유머책에 나오는 고집스런 바보 리더와 똑똑한 부하가 만드는 시끄럽고 엉망인 조직, 국가가 대부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특유의 사투리와 어눌한 말투 등으로 정치 일생 내내 ‘머리가 나빠 안된다’는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런 비판을 애써 부정하는 대신 “머리는 빌릴 수 있으나 건강은 남에게 빌릴 수 없다”는 말로 응대했다.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이를 극복해서 장점으로 바꿔가는 ‘지혜’와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최다선 의원도, 또 대통령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지식의 양이 매년 몇 배씩 늘어나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잡학다식하면서도 전문성까지 겸비한 인재는 사실상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 한편에 휘둘리는 얕은 감성이 아닌, 현실을 꿰뚫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 결정하는 지식인의 냉철함과 객관적 판단 능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5000만 국민, 나아가 미래 자손들의 운명까지 가를 수 있는 결정의 시점에 놓인 지금, 자칭 지도자들의 날카로운 총기는 더욱 절실하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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