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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세대 민중미술가 촛불광장의 기억…16m 캔버스에 흙으로 그려내다
임옥상 ‘바람, 일다’ 전시회
9월17일까지 가나아트센터


1세대 민중미술작가에게 지난 겨울의 광화문 광장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절박함에 매주 집회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는 그는 그 절절했던 광장의 기억을 캔버스에 소환했다. 유화물감 대신 흙으로 그린 광장엔 ‘변화’를 바라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졌다. 폭만 16미터, 30호 캔버스 108개를 이은 대작이다. 거칠고 강하게 살아있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은 흙을 만나 한결 차분해 졌다. 촛불이 파도로 변하는 그 순간을 작가는 노란, 주홍의 동그라미로 표현했다. 먹먹해진 마음이 리드미컬한 동그라미를 타고 둥실 떠오른다. 임옥상(67)의 신작 ‘광장에, 서’ 다.

임옥상 작가는 23일부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바람 일다’를 연다. 한국 현대사회의 중요한 정치 변곡점을 지나서일까, 6년만의 개인전은 ‘촛불’로 가득찼던 광장을 다뤘다. 그러나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임옥상 작가는 ‘촛불’을 다루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호재(서울옥션) 회장이 세 번이나 와서 물었어요. 아직도 안됐냐고…내가 갈피를 못잡은 거죠. 촛불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답이 안나오니까” 현실참여적 작품을 많이 선보였던 베테랑 ‘리얼리즘 미술가’를 고민에 빠지게 한 건 “이미 사진으로 수천 번 수만 번 보여진 장면인데 그걸 또 중복해서 보여줄 순 없지 않느냐”는 이유였다. 그렇게 작업한 ‘광장에, 서’는 이전의 노골적인 기록화와는 다른 결을 보인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기념비적인 역사기록화다. 그 이상의 해설이 필요 없고 불가능하다”고 격찬했다. 

임옥상, ‘광장에, 서’,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360x1620cm (108 pieces), [제공=가나아트센터]

이전 작업에서도 흙을 선보였지만 이번엔 좀 더 자유자재로 흙을 다룬다. 지푸라기, 종이, 접착제 등을 섞은 흙은 작가의 의도를 더 깊숙히 수용하며 자유롭게 변화하는 동시에 재료적 질감은 한층 강조됐다. 인물화를 비롯 청와대 뒤 산세를 배경으로 흰꽃과 분홍 꽃밭을 그린 ‘여기, 흰꽃’과 ‘여기, 무릉도원’도 흙으로 그린 그림이다.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전에도 흙을 매체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해 왔지만 이번 작업은 흙을 물질적 재료 이상의 개념적 매체로 파악하는 작가의 인식론적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작가는 “우리는 결국 ‘땅 위의 존재’”라며 “사람들이 흙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민들레 홀씨로 그린 노무현ㆍ문재인 대통령의 실루엣 초상, 용산 화재 참사를 다룬 ‘삼계화택-불2011’과 농민 백남기의 물대포 사망사건을 그린 ‘상선약수-물2011’도 눈에 띈다.

작가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임옥상은 할 일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일부의 시선에 대해 “나는 좌도 우도 아닌 아나키스트”라며 “한쪽 편에 가담하는 존재로서의 임옥상이 말이 되느냐”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면서 “권력(의 속성)은 배반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같은 예술가들이 끝까지 감독하고 주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9월 17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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