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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선충 ‘댄스 유전자’가 푼 진화 비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생물학의 최대 난제 중 하나는,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행동의 ‘유전적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동물의 거의 모든 행동에는 유전이 관여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관여한다‘는 말이 ‘결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수많은 환경적 요인도 동물의 행동에 깊이 개입되기 때문이죠.)

국내 연구팀이 같은 꼬마선충이라도 지역에 따라 왜 서로 다른 행동을 보이는지, 그 유전적 비밀을 풀었습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소속 이준호 교수 연구팀은 이같은 연구 결과를 17일 밝혔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은 서식지를 옮길 때 몸을 흔듭니다. 이를 ‘닉테이션(nictation)’이라고 하는데요.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차를 타려고 하는 ‘히치하이킹(Hitchhiking)’과 비슷합니다. 예쁜꼬마선충이 서식지를 옮기기 위해 몸을 세워 흔들며 쥐며느리나 달팽이 등에 달라붙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영국산 꼬마선충은 닉테이션 행동을 잘하는 반면, 하와이산 꼬마선충은 닉테이션 행동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연구팀은 이 사실을 발견한 뒤 두 꼬마선충의 유전자 차이를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하와이산 꼬마선충에 영국산 꼬마선충의 유전자를 삽입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영국산 꼬마선충의 유전자에 있는 유전 물질은 ‘파이RNA(piRNA)’ 입니다. 하와이산 꼬마선충에 영국산 파이RNA를 도입한 건데요.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하와이산 꼬마선충의 닉테이션 능력은 올라갔지만 생식 능력은 떨어졌습니다. 하와이산 꼬마선충이 번식 능력을 버리는 대신, 닉테이션 능력 향상으로 서식지를 옮길 수 있게 된 것이죠. 연구팀은 이 현상을 생물의 다른 기능들이 서로 능력치를 바꾸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진화 현상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런 유전적 조절 기작은 닉테이션 행동뿐만 아니라 개체의 생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행동 변이를 조절하는 파이RNA가 종의 진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구진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꼬마 RNA 중 하나인 파이RNA는 그 기능과 역할이 덜 알려져 신경과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대상으로 꼽힙니다.

이같은 연구는 파이RNA라는 유전 물질이 종의 ‘분산’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을 조절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삼성 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았으며,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에릭 엔더슨(Erik Anderson) 교수 연구팀과 긴밀한 협력 연구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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