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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종 자소서에 거짓 장래희망청소년들 “가짜인생이 싫어요”
“제 인생을 합격률 높은 자소서에 끼워 맞춰 살고 있어요. 무엇이 제 본래 모습인지 헷갈려요.”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소민(19ㆍ여) 양의 장래희망은 방송국 PD지만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자기소개서에는 ‘과학자’라고 적었다. 김 양은 하루에 해외 인디영화를 2편씩 꼬박꼬박 볼 만큼 인디영화 매니아지만 자기소개서에는 ‘발명품 만들기’라고 지어냈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헤럴드DB]

김 양이 가짜 꿈과 취미를 자소서에 적는 이유는 수시모집에서 장래희망을 일관적으로 적고 취미생활도 전공과 관련된 것으로 쓰는 게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담임선생님의 조언 때문이다.

김 양은 “수시 경쟁률이 60대 1이 넘을 만큼 치열하기 때문에 일단 합격하기 좋은 자소서를 쓰는 게 전략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와 아닌 사람을 지어서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고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수시전형 확대에 따라 도입된 자기소개서가 학생들의 일상을 통제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8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비중은 73.7%에 달한다. 자기소개서가 중심이 되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증가하면서 입시를 위해 거짓된 자기소개서를 쓰고 이에 맞춰 가짜 생활까지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학생들 사이에선 자기소개서를 그럴듯하게 쓰는 게 ‘경쟁력’으로 통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목동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전형민(18) 군은 “대학에 진학한 주변 선배들에게 그동안 지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써야 합격한다”면서 “지금까지 수능준비, 내신 준비로 장래희망이나 전공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루에 한번씩 꿈이 바뀌는데 자소서에는 한 우물을 판 것처럼 쓰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냐”며 반문했다.

자소설을 써야 하는 것은 고등학생만은 아니다.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에 진학하는 중학생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자기소개서를 지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외국어고등학교 진학을 준비 중인 김모(15) 양은 “학교 측에서도 평가를 위해서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학생들 뽑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외고에 진학하는 게 현실인데 대입을 위해서 거짓말 경쟁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수시 모집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면서 일각에선 미리 가고싶은 대학과 전공에 맞춰서 교내ㆍ외 활동과 자기소개서를 컨설팅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경영학과를 진학을 원하는 이모(17) 양은 아직 고3이 되려면 2년 가까이 남았지만 이미 자기소개서의 뼈대를 만들어놓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시기에 자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서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연구부장은 “청소년 시기에는 자아에 대해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한데 한국의 학생들은 직업과 전공을 빨리 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학에 가서도 본인과 맞지 않아서 우울해 하는 학생들도 많다”며 “뒤늦게 진로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해보는 게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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