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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빙할 때마다 멀미약 먹는…난 천생 수중사진작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여고생은 감기가 심해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의 심장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정상적으로 왼쪽에 있어야 할 심장이 가슴 한가운데 있었다. 폐렴을 의심했던 여고생 어머니에게 의사는 아시아에서 매우 드문 사례라며 딸이 수영이나 격렬한 운동을 하지않도록 당부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심폐소생술을 할 경우 갈빗뼈가 심장을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은 여고생은 자신이 초등학교 6년 동안 수영을 그렇게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선천적으로 폐가 심장에 눌려 남들보다 호흡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국내 최초 수중사진작가, 다이빙 장비를 메고 수심 101m를 찍은 세계 최장 기록 보유자. 글로벌 사진 업계서 주목받는 여성 작가 와이진(Y.Zin·38)의 어린 시절은 지금 그녀가 받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정반대였다.

국내 최초 수중사진작가 와이진이 지난달 강남구 캐논갤러리에서 열린 수중사진전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거운 산소통을 몸에 달고 그 누구도 쉽게 가보지 못한 바닷속 깊은 곳에서 사진 촬영까지 하는 와이진은 실내수영장에서 제대로 수영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열등생’이었다. 더군다나 위기상황 시 응급조치도 받기 어려운 악조건마저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와이진은 왜 그토록 어렵고 위험한 수중작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후 방송사와 유명 사진작가 사무실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사진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 평소 자신이 들고 다니던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이를 본 주위에서 사진으로의 입문을 권유하면서 진로를 바꿨다. 역광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사진학을 배우기에도 너무 늦은 시기였다. 결국 평소 알고 지내던 사진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실무 위주로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동안 방송, 영화 분야에서 쌓은 인맥 덕분에 꾸준히 실전에서 실력을 키울 기회가 주어졌다. 주로 앨범이나 방송, 영화 포스터 촬영 등이 대부분이었다. 대신 상업사진 위주이다보니 사진작가로서 느끼는 갈증이 다 해소되지 않았다.

와이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갈증의 열쇠를 물에서 찾았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디지털 사진 세상에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나만의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님과 의사선생님이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니까 오히려 물에 대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와이진은 “왜 처음부터 안된다고 포기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해보고 안되면 그 때가서 안되는 거라고 생각해도 늦지 않다”며 자신의 고집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수중촬영이다. 자신이 극복해야 할 대상을 사진과 접목한 셈이다. 자신이 물에 들어가는 것과 물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똑같이 아이러니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와이진은 “기계라는 카메라를 물에 집어 넣는 것과 빛의 예술인 사진을 빛이 거의 없는 물속에서 촬영하는 것이 청개구리인 자신과 닮았다”며 솔직하게 소개했다.

수중촬영의 핵심은 숙련된 스쿠버다이빙 기술이다. 와이진은 “물속 촬영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떠있는 상태에서 장비에 의존해 숨을 쉬어야 하는 일이라 스쿠버다이빙 기술이 완벽해야 카메라를 잡을 수 있다”며 “안전을 위해 스쿠버다이빙 강사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와이진은 현재 글로벌 공식 단체로부터 자격증을 부여받은 정식 스쿠버다이빙 강사다.

놀랍게도 선천적으로 갖고 있던 단점이 다이버로서는 장점이 됐다. 폐활량이 적다보니 수영하는 것은 어렵지만 공기탱크를 메고 물속에 들어가면 일반인보다 공기를 적게 써 더 오래 물속에 머물 수 있다. 학창시절 그토록 어려웠던 수영이었지만 다이버로서는 우등생이 된 것이다. 나아가 2008년 국내 최초 내셔널지오그래픽 여성 수중촬영 다이버 자격을 취득했다. 스타일리스트에서 사진업계로 들어선 지 채 5년도 안된 시간이었다.

이를 통해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수중작가로서 다이버 훈련을 받았다. 2010년부터 작년까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들과 소통하는 행운도 얻었다.

와이진이 더욱 사진업계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사이드마운트 TDI 트라이믹스’ 기법으로 수심 101m 도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산소, 헬륨, 공기 등 세가지 기체가 섞인 탱크를 옆에다 메고 잠수해 들어가는 방식이다. 안전을 고려해 처음부터 100m 이상 들어가지 않고 첫날 50m, 이튿날 60m씩 조금씩 강도를 높이며 도전과제를 수행했다.

그는 세계 1등이란 기록보다 물속 101m까지 들어가는 동안 몸과 마음으로 익힌 경험과 지식이 더욱 값지다고 했다. 와이진은 “조금씩 깊이를 늘려가는 과정 동안 안전과 스쿠버다이빙 기술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체적 부담이 크게 따른다. 심장에 더해 달팽이관이 남보다 반 정도 가늘어 어지럼증을 더 쉽게 느낀다.

수중촬영을 막 시작했을 때는 파도가 심해 바다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와이진은 “나에게 장애가 많다는 절망과 동시에 오기가 더욱 생겼던 시절이었다”며 “지금도 다이빙할 때마다 멀미약 2개를 먹는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수중촬영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히려 욕심과 열망이 더 커진다고 밝혔지만, 그녀가 수중작가로서 더욱 프로답게 느껴진 대목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다는 스튜디오와 달라 입맛대로 맞춰주지 않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에게 용기는 신체 약점을 딛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간절했던 순간을 포착하고도 어지러움을 느낄 때 카메라를 끄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에 대해 늘 정신훈련을 하고 있죠.”

와이진은 이달부터 미국상어보호단체와 함께 상어를 촬영하며 해양생태보존을 강조하는 샤크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국 샌디에고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로 가서 촬영하는 일정이다. 한달 이상은 배에서 먹고 자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다.

와이진은 “그동안 와이드앵글 수중촬영은 늘 유럽인과 미국인의 몫이었으나 아시아인도 지식과 열정만 있으면 못할 일이 아니다”면서 국내 최초 수중촬영작가로서 강한 도전정신도 보였다.

거대한 고래를 바다에서 마주하는 것이 꿈이라는 와이진은 80세, 90세가 돼도 물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구의 70%가 바다인데 아직 못가본 곳이 지구의 30%인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많다.

그동안 끊은 비행기 티켓은 대부분 바다가 있는 지역이었다”며 “1년의 상당부분을 외국에서 보내는데도 바다와 접해있지 않은 파리나 로마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수줍게 웃었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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