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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은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 새로 쓴 한국근대사

  • 기사입력 2017-08-1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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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스런 시기가 바로 위대한 시기였다’
황태연 교수, 1894~1945년 한국근대사 3부작 통해 새롭게 기록
대한제국은 입헌적 계몽군주정,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
갑오년, 갑신년 日침략, 왜란으로 대한제국 멸망 설명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대한제국은 우리나라 초유의 근대국가였다.”

올 초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이란 책을 통해 동학농민전쟁과 갑오경장,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신 등을 새로운 용어로 규정한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청계출판사)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대한제국을 퇴행성 복고주의로 배워온 이들에게 이 말은 허황하게 들리지만 황 교수는 원고지 6400매, 1136쪽의 방대한 분량을 통해 이를 조목조목 설명해나간다.

황 교수는 우선 근대성의 개념을 명확히 정리한다. 국가차원의 근대화란 정치와 종교의 분리, 즉 정치의 세속화, 탈신분제, 민족국가, 국민국가의 형성을 의미한다. 또 군사적 근대화는 국민개병제, 무기의 근대화를, 경제의 근대화란 시장화, 산업화로 이를 잣대로 저자는 대한제국 12년을 샅샅이 해부한다.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황태연 지음/청계출판사

민비시해 이후 반년간 지속된 칭제요청 상소운동에 따라 대한제국을 세운 고종은 1897년 법규교정소를 설치, 한국 초유의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제정하고 1899년 8월17일 반포한다. 저자는 이를 한국 최초의 헌법으로 규정, 종래 일제와 박영효에 의해 공포된 ‘홍범 14조’를 한국 최초의 헌법이란 시각에 못을 박는다.

대한제국의 헌정성격을 입헌적 계몽군주정으로 본 것이다. 국제는 전제정치와 황제권을 규정한 2,3조 외에 국민의 권리와 정부의 구성 등에 관한 규정이 없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저자는 이는 국제 1편에 해당하며, 이후 제2편, 제3편을 수립하는 작업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어지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또 국제에서 주목할 것은 제2,3조의 전제정치와 황제권이 아니라 1조에 명시한 민심의 급선무인 자주독립국을 규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한제국기의 사상과 국가비전에 대해서도 황 교수는 새로운 주장을 편다. 저자는 당시 가장 빈번히 언급된 사상으로 민국(民國)이념을 든다. 신분적으로 자유 평등한 국민국가를 지향, 서얼· 중인· 평민· 천민 출신에게 공무담임권을 보장하고 대의적 참정제도를 확립하는 등 민국이념은 대한제국 발전의 정치사상적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그동안 이들 사상이 충분히 언어화, 이론화, 개념화되지 못하고, 심지어 학자들에 의해 역사적 의미맥락이 다르게 쓰인 점을 지적하면서 제대로 자리매김시키려는 뜻을 내비쳤다.

대한제국이 아시아 2위의 경제대국이었다는 사실도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했다.

고종의 광무개혁은 ‘전통을 근본으로 삼고 새것을 참조한다’는 구본신참론이었다. 2236개소의 국공립·사립신식학교 설립, 신식 경찰· 신식 군대의 육성, 미국유학파의 귀국등 신 지식인 등 물질적 발전과 함께 제도와 정신의 진보가 이뤄졌다.

특히 경제발전 수치는 놀랄 만하다.

OECD 경제통계 책임을 맡았던 앵거스 매디슨이 2012년에 산출한 한·중·일 각국의 1인당 GDP통계를 보면, 조선경제는 늦어도 개항 훨씬 전인 1869년 이전에 저점을 통과했고, 1911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815달러를 기록했다. 고종시대 전반, 특히 대한제국 전반에 걸쳐 고도성장이 진행됐다는 얘기다.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이어 아시아 4위에 올랐던 한국경제는 이후 비약적 성장을 계속해 1915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추월, 일본 다음의 경제대국에 오른다.이는 일제가 1905년부터 1919년까지 한국에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고 수탈만 일삼던 시대에 달성된 것으로, 저자는 이를 광무개혁의 성과가 이어진 결과로 해석한다.

대한민국의 근대화의 토대는 바로 대한제국에서 마련됐다는 것이다. 광복군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민국 국군은 대한제국의 3만 ‘한국군’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 국화 무궁화, 애국가 가사도, 훈민정음의 근대적 재창제물로서의 한글도 대한제국에 가 닿는다. 근대적 시장경제, 근대적 기업과 회사, 근대적 경제발전, 도시계획도 대한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근대적 경제성장이 일제시대에 들어서 비로서 개시됐다는 상당수 학자들의 주장과 다르다.

그렇다면 경제적 군사적으로 고도성장 중이었고 정치, 사회, 제도 면에서도 선진적이었던 대한제국은 왜 멸망한 걸까?

식민지근대화론을 대변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대체로 내재적 파탄으로 가난해서 자멸했다거나 외세의 작용에 무릎을 꿇은 결과 혹은 모든 체력이 소진된 나머지 해체됐다는 식으로 갈린다.심하게는 가난한 데다 정치적으로 수구반동적이라 자멸했다는 주장도있다.

황 교수는 어느 약소국들도 가난하다고 자멸하거나 스스로 해체되지는 않는다며, 이는 식민사관이 주입한 자학적 역사관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그가 보는 대한제국의 멸망은 1904년 갑진왜란이 원인이다.

“1894년 갑오왜란때 침입했다가 고종의 아관망명과 대일 철군투쟁으로 일시 퇴각했던 왜군은 1904년 2월 6일 다시 침입해 반도 전역을 점령했다. 왜군은 이 갑진왜란의 여세로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한국 국민군의 무력저항이 무기와 탄약의 고갈로 일시 악화됨을 틈타 1910년 주권마저 빼앗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갑오왜란으로 패망했던 조선이 고종의 아관망명으로 ‘대한제국’으로 부활했다면, 대한제국은 갑진왜란으로 패망했다가 41년 장기항전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부활한다.

황 교수는 이번에 동시 출간한 한국근대사 3부격인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을 통해 대한제국이 패망한 때부터 대일항전 끝에 1943년 11월23일 카이로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이 국제문서로 약정되기까지 40년의 역사를 다룬다.

자학 속에서 역사의 연속성을 잃어버린 주요 시기 우리의 역사를 곧게 한 줄로 엮어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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