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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부회장 재판…특검, 12년 구형] 넉달만에 ‘세기의 재판’ 종착역…도미노의 시작은 ‘뇌물공여’
李 부회장 25일 선고, 판결 가를 쟁점은?

최순실·재단에 준 돈 뇌물로 보기 어려워
崔-朴 공범 입증돼야 이부회장도 유죄
정유라씨 알게 된 시기 등도 중요한 단서
삼성이 바라는 대가가 무엇인지도 쟁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7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이로써 전직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뇌물 혐의를 둘러싼 ‘세기의 재판’은 넉 달 만에 재판부 판단만을 남겨두게 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와 미르ㆍK스포츠재단,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298억원을 뇌물로 건네고 213억원을 약속한 혐의를 받는다. 여기에 회삿돈으로 뇌물을 건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가 추가됐다. 최 씨의 독일법인인 코어스포츠에 79억여원을 보내면서 외환거래신고를 하지 않은 재산국외도피 혐의와 최 씨에게 명마(名馬)를 제공하면서 허위용역계약을 맺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도 있다. 


특검팀이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할 수 있었던 건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 혐의 때문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죄는 도피시킨 재산의 규모가 50억원이 넘을 경우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유ㆍ무죄와 형량을 결정할 핵심 열쇠는 ‘뇌물공여’ 혐의로 꼽힌다. 이 부회장의 5가지 혐의는 뇌물공여죄를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겹겹이 쌓인 구조다. 삼성이 최 씨 측에 건넨 돈이 뇌물로 인정되면, 회삿돈으로 뇌물을 건넸다는 횡령 혐의와 최 씨 독일법인에 외환거래 신고를 하지 않고 거액을 보낸 재산국외도피 혐의가 차례로 인정될 공산이 크다. 반대로 뇌물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재판부가 회삿돈을 최 씨 독일법인과 재단에 보낸 것이 정당한 ‘투자나 계약’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특검은 삼성 측이 뇌물의 외형을 바꿔서 허위계약을 작성하고 국외로 돈을 빼돌렸다는 관점인데, 애초에 뇌물이라는 프레임이 깨지면 정상적인 계약이라고 볼 여지가 생긴다“고 했다.

재판의 핵심인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되는 건 쉽지만은 않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되려면 재판부가 네 가지 사실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하나라도 인정되지 못한다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삼성이 대가를 바라고 돈을 줬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특검팀은 삼성이 최 씨와 재단에 거액을 준 배경에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다고 봤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을 통해 최소 비용으로 그룹 지배력을 키우려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찬성표를 받아내는 등 정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합병에 외압을 넣은 혐의를 받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6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특검은 전면에 내세웠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은 계열사의 사업일 뿐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맞서고 있다. 변호인은 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하더라도 그룹 핵심계열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결권에는 변동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 부회장이 최 씨 딸 정유라 씨를 언제 알았는지 여부가 쟁점 사항이 됐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지난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과 1차 독대를 할 당시부터 정 씨를 알고 있었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이 독대에서 ‘승마지원’을 강조할 때 이 부회장이 이것을 ‘정유라 지원’이라 받아들였다고 특검팀은 판단했다.반면 이 부회장은 지난 피고인신문 과정에서 “국정농단 사건 보도 이후 정 씨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최지성(66) 전 미래전략실장도 “비인기 종목인 승마가 잘 지원되지 않으니 능력있는 삼성이 맡으라고 던져준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준 돈이 뇌물로 인정되려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뇌물수수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오갔어야 한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세 차례 독대가 청탁의 장이었다고 보고 있다. 독대 전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 내용과 독대 후 안 전 수석이 받아적은 수첩 내용을 비교해 독대 당시 청탁이 있었을 것이라 추론한 것이다. 그러나 독대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기업 현안에 대한 청탁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독대 전후 작성된 간접증거와 독대 당사자 진술 가운데 어느 쪽을 믿을지는 전적으로 재판부 판단에 달려있다.

이 부회장이 재단과 최 씨에게 433억원을 건네거나 약속한 사실을 보고받았는지도 유ㆍ무죄를 가를 주요 쟁점이다.

통상의 기업범죄에서는 총수가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아 실무라인만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건에서도 최 전 실장은 “정 씨의 승마지원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부회장도 지원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반면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하며 질책까지 받은 이 부회장이 승마지원을 챙기지 않은 건 어불성설이란 입장이다. 그룹 계열사에서 298억원의 돈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최고책임자인 총수가 몰랐을리 없다고도 부연했다. 재판부는 삼성의 결재 라인과 미래전략실의 보고체계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뇌물공여 혐의가 입증되려면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최 씨와 박 전 대통령이 공범(共犯)이라는 사실도 입증돼야 이 부회장의 혐의도 유죄로 볼 수 있다. 뇌물죄는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범죄이지만, 이 사건에서 돈을 받은 건 최 씨와 재단이다. 돈을 받은 최 씨와 공무원인 박 전 대통령 간 연결고리가 탄탄히 입증돼야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 특검팀은 법정에서 “승마지원 지시는 박전대통령이하고 구체적인 요구는 최 씨가했기때문에공모 관계가 성립하고, 삼성도두사람이공범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범행기간 수백 차례 차명폰으로 의견을 교환한 점, 최 씨가 재임기간 옷값을 대납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사적인 일까지 봐준 점을 들어 공모관계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박 전 대통령이 범행으로 이익을 보는 등 뇌물수수를 위해 공모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고도예 기자/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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