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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연의 외교탐구] 한국발 ‘코리아배싱’에 고조되는 ‘코리아패싱’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지난달 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 이후 한미 정상이 전화통화를 하지 않아 ‘코리아패싱’(Korea Passingㆍ한국 무시하기) 우려가 확산됐다. 여기에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공화당) 의원이 한 방송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관련해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서 나는 것이고, 수천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 본토)서 죽는 게 아니다”고 말하자 코리아패싱 우려는 최고조에 달했다. 

[사진=연합뉴스]


▶코리아패싱, 사실일까?=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의 통화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악관은 “양국 수장은 북한이 미국과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역내 국가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 미국이 가진 모든 수단을 사용해 한국과 일본을 보호하겠다는 철통같은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보도문 원문: https://www.whitehouse.gov/the-press-office/2017/07/30/readout-president-donald-j-trumps-call-prime-minister-shinzo-abe-japan)

미일 정상간 통화에서 ‘한국’이 언급된 이유는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 일본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한국의 협조를 반드시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 한국의 이익을 자국의 이익에 손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조율할 의사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 외교안보 소식통은 “정권교체든 주한미군 철수든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한국과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외교가의 정설”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외교적 결단을 내리든, 한국과 의견조율을 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발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발언’의 진의를 이해하려면 원문을 볼 필요가 있다. NBC방송에서 공개한 그레이엄 의원의 발언 원문은 이러하다. “There’s going to be a war to stop [Kim Jong Un], it will be over there. If thousands die, they’re going to die over there. They’re not going to die here. And He has told me that to my face”(김정은을 저지하는 데에 전쟁이 필요하다면 북한에서 끝날 거다. 수천명이 살해된다면 그건 거기 일이다. 여기(미 본토)에서 수천명이 죽는 일은 없을 거다, 그는 내 면전에서 그렇게 말했다)

동맹국 한국인이나 주한미군의 희생과 상관없이 전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요,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상관안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을 향한 ‘경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구나 한반도 전쟁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맨 앞에서 미국을 진두지휘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 6월 상원 군사위원회의국방예산 관련 청문회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한반도에서의 무력사용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외교적 수단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편히 잠자선 안된다”면서도 “전 세계가 그에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라며 발언수위를 조절했다. 전쟁이 발생할 경우 전체 지휘상황을 통솔해야 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는 단 한번도 ‘전쟁’이라는 발언을 경솔하게 내뱉지 않았다. 현재 매티스 장관은 북한의 2차 ICBM급 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발언을 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누가 코리아패싱을 조장하나= 코리아 패싱의 위험은 ▷한국이 배제된 일방적인 미국의 군사행동과 한반도 군사충돌, ▷미국과 중국의 밀약(한국을 배제한 한반도 협상) ▷ 김정일 정권 붕괴 및 단기적인 분단 안정화 등으로 꼽힐 수 있다. 결국 코리아패싱 담론은 한국을 배제한 협상이 우리의 국가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위험상황 속에서 중요한 것은 우려가 아니라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판단력이다. 물론,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모든 양자협상에 주역이 될 능력과 자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외교의 가장 큰 과제는 한반도를 놓고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를 동시에 존중한 대북정책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출범 3개월이 된 새 정부가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외교는 당장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영역의 업무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록 베를린 구상과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주도적 외교를 천명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북핵ㆍ미사일 뿐만 아니라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미중 전략적 안보지형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당장 3개월 된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외교적 어젠다를 구현하기 위한 체계적인 토대 마련이다.

코리아패싱 담론의 가장 큰 문제는 ‘국익’의 본질을 흐린다는 것이다. 코리아패싱 담론은 ‘정부무능론’과 ‘미국 불신론’ 나뉘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당장 북핵ㆍ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건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단결된 목소리로 한국의 국익을 반영한 외교정책을 꾸준히 추진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국의 지정학적 한계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한계를 자학하며 한탄만 하는 ‘코리아배싱’이야말로 코리아패싱을 초래한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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