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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과의 사투…쪽방촌 가보니] 방안 35도…선풍기 바람도 끈적… 샤워물도 미지근…땀이 비오듯
폭염과의 사투…쪽방촌 가보니
방안 35도…선풍기 바람도 끈적
샤워물도 미지근…땀이 비오듯
더위 못견뎌 무더위 쉼터로


“1시간마다 찬물 뒤집어 써야돼. 안 그러면 끈적거려 못 견뎌.”

기온이 33도를 기록한 지난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 동네에서 만난 주민 이천용(61) 씨는 더운 공기가 가득한 좁은 방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방 한구석을 차지하는 오래된 대형 냉장고는 열기를 내뿜으며 방 안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통풍이 가능한 곳이라고는 방충망이 걸린 방문과 작은 창문 뿐이었다. 이 씨는 강풍으로 켜둔 선풍기에 의지한 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았다. 하지만 선풍기에서도 뜨거운 바람만 나왔다.


5년 째 쪽방촌에서 홀로 거주하고 있다는 이 씨는 “가만히 있어도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니 견딜 수가 없다”며 “매 시간 샤워를 하지 않으면 더위를 버틸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 씨는 동네에 위치한 무더위 쉼터도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리가 불편해 외출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쉼터에 가봤자 특별히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다”며 “그저 방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속 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 쪽방촌에서는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더위”라며 “여름마다 이렇게 사는 게 그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씁쓸해했다.

‘살인더위’가 계속되면서 쪽방촌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서울역 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용산구 동자동, 갈월동과 후암동에 걸쳐 있는 쪽방촌엔 지난 6월 기준으로 10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서울에 있는 쪽방상담소 5개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로 서울시 전체 쪽방촌 주민의 약 1/3을 차지한다. 주민 대부분이 홀로 사는 중년 남성이며 거동이 불편한 일부 주민들은 무더위에도 방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인근에 거주하는 김만(78) 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옷가지와 생활용품으로 가득 찬 작은 쪽방에서 거주하는 김 씨는 더위를 견디기 힘든 듯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김 씨는 “방이 너무 덥지만 다리가 불편해 외출하기가 쉽지 않다”며 “그저 방 안에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방 내부는 햇빛만 없을 뿐 습하고 더운 공기 때문에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이날 오후 2시께 김 씨 방의 온도를 측정한 결과 내부 온도는 35.3도를 기록했다<사진>. 선풍기를 틀어놓았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씨는 이따금씩 방을 나와 담배를 피며 더위를 쫓았다.

또 다른 주민 김범수(54) 씨는 그나마 무더위 쉼터를 다니며 더위를 피하는 편이다.

6년 전에 쪽방촌에 정착했다는 김 씨는 선풍기 한 대만 사용하다 얼마전 작은 선풍기를 한 대 더 구입했다. 도무지 더위를 이겨낼 방법이 없어서다. 24시간 내내 더위로 씨름 중이라는 김 씨는 “방에 커튼을 치고 샤워를 자주 하고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야 어떻게든 견딘다”며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무더위를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의 관리 하에 위탁운영되고 있는 쪽방상담소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간호사와 함께 하루에 3번씩 동네를 돌며 주민들의 건강을 모니터링을 한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생수 등 구호물자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개개인 성격에 따라 집에 홀로 있는 것을 선호하는 주민들이 있지만 더위에 취약한 주민들의 건강을 고려해 최대한 무더위 쉼터로 나오도록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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