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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C는 사라질 것인가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 직장인 A씨(38)의 집에는 대학 시절 사용하던 13년된 고물 데스크톱 컴퓨터가 있다. 부팅에만 5분이 넘게 걸리는 이 컴퓨터는 한 때 A씨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골방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A씨는 “즐기던 게임도 접었고, 이젠 너무 낡아 인터넷 서핑조차 버겁다. 새 컴퓨터를 살 생각도 없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훨씬 길다. 9살 딸도 컴퓨터보다는 스마트폰이 주요 관심사”라고 말했다.

#2. B씨(42)는 최근 대세라는 크롬북 구매를 고민중이다. 크롬북은 별도의 저장장치 없이 클라우드 기반의 컴퓨터다. 디스플레이, 저장장치, 처리장치가 PC의 3대 구성요소인데, 이 가운데 처리장치와 저장장치를 외부 용역을 준 PC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B씨는 “가격이 PC에 비해 월등히 싸다. 데이터 송수신이 보다 빨리지면 결국 PC를 대체하는 용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와 유사한 사례는 주변에 흔하다.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통계치에서도 확인된다. PC는 한 때 일반 가정에서 가장 고가의 ‘귀족계급’ 가전에 속했으나, 이제는 게이밍 등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고객시장으로 축소 변화해가고 있다.

PC시장 축소 추세는 시장 예측보다 가파르다. 한 때 ‘장래에는 개인마다 컴퓨터를 갖게 될 것’이란 미래 예언이 무색할 지경이다. ‘마니아 층’ 고객군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시장이 사라질 때 나타나는 통상적인 증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멸 보다는 여러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일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세계 PC 출하량은 지난해 2분기 대비 280만대 줄어든 6110만대로 집계됐다. 지난 2015년 2분기 출하랑은 6790만대였다. 연도별 PC출하량을 보면 추세를 확연히 파악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한해 전세계 PC 출하량은 3억5600만대였으나 2016년에는 그 수가 2억7000만대로 줄어들었다. 가트너가 집계한 PC는 데스크톱PC와 노트북PC를 포함하며, 아이패드 또는 크롬북은 PC에 포함되지 않는다.


PC시장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모바일로의 이동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PC시장이 본격 침체기를 맞은 것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도 애플은 2007년 6월 29일 아이폰을 처음으로 꺼내놓았다. 이후 급성장하기 시작한 스마트폰 시장은 기존 PC 시장을 위협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급성장은 PC시장의 10년 장기 불황의 시작이었다.

PC시장을 위협하는 또한번의 기제는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태블릿PC 시장의 급성장세다. 부팅시간이 필요없고 작으며 가방에 손쉽게 넣고 다닐 수 있는 IT기기가 PC시장의 높은 벽을 아래에서부터 허물기 시작했다. 아이패드가 출시된 시점은 2010년이다. 이후 전세계 전자기기 제조사들은 안드로이드와 MS 운영체제(OS)를 탑재한 태블릿PC를 잇따라 출시했고, 이 과정에서 데스크톱과 노트북PC 시장은 가파르게 추락했다.

가트너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1년 개인용 컴퓨팅 기기 시장 80% 이상을 점유하던 데스크톱PC는 2011년 45%로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태블릿PC 등 스마트패드 공급 규모는 3배 이상 증가했다. 가트너는“데스크톱PC는 일체형PC로 진화해 제조·방송·출판 등 대형 화면을 필요로 하는 업종에서 사용될 전망”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PC시장에 대한 미래전망에는 크게 두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침체’ 시각과 ‘소멸’ 시각이다.

PC 시장이 ‘침체’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특정 시일이 지날 경우 다시 PC시장이 살아날 수 있음을 가정한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 등 모바일로의 PC 시장 이동이 현재의 PC시장 침체의 원인이었지만 사용성과 활용성 측면에서는 테스크톱PC나 노트북PC를 대체하기에 힘든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은 PC시장이 앞으로도 지속 될 것이란 주장의 근거로 원용된다.

PC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이나 패드가 대체키 어려운 영역이 있다. 디자인 등 고해상도 작업과 고용량의 작업을 해야하는 동영상 편집, 게임 등의 영역은 여타 제품들이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에비해 결국에는 PC시장이 소멸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모바일을 넘어 ‘웨어러블’ IT기기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전원을 연결하고 부팅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PC시장은 점점 더 작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또 아마존과 구글 등 세계 IT 대기업들이 데이터센터 등 클라우드 서비스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 역시 PC시장을 더 빠르게 축소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트너 미카코 키타가와(Mikako Kitagawa) 연구원은 “DRAM, SSD 및 LCD 패널의 부품 부족으로 PC 가격이 상승했다. 2017년 2분기 PC 수요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SSD나 DRAM 제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은 반도체인데, 아마존 등 ‘공룡 IT기업’들이 대거 반도체를 흡수하면서 관련 부품 가격이 급등했고 이에 따른 PC가격 인상은 또다시 PC출하량 감소로 이어지는 결과가 됐다는 얘기다.

시장 축소는 소수 마니아 층의 소비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시장 판도 변화로 이어진다. 현재의 PC시장도 그렇다. 예컨대 현재 프리미엄 PC시장의 화두는 ‘게이밍용 컴퓨터’, ‘게이밍용 모니터’ 등이다. 개별 단가가 비쌈에도 불구하고 소수 마니아층 위주로 고사양을 요하는 게임에 적합한 PC에 대한 시장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PC제조사들은 물론 대만의 아수스 일본의 PC제조사들도 앞다퉈 프리미엄 게이밍 시장에 뛰에들고 있는 것도 사실은 PC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초에 증기선이 나왔을 때 범선 시장은 ‘과거 향수’를 그리는 소수 마니아들만의 시장으로 축소된 바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필름카메라를 완전히 대신했음에도 여전히 소수 필름카메라 마니아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클라우드 서비스와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등은 PC 시장을 더 빠르게 줄어들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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