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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유지영 강릉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알코올 의존증 입원치료, 어찌 하오리까
의료계의 강한 반발 속에 졸속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 한 달여 만에 당초 우려됐던 후유증을 속속 드러내고 있다. 정신과 강제입원으로부터 환자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법이 오히려 입원치료가 절실한 환자들마저 병원 밖으로 내쫒는 구실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법 개정 후 진료 현장은 그야말로 어수선하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치료 문제는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일선 병·의원에서는 알코올 의존증 치료에 몸을 사리는 눈치다. 환자를 치료하려다가 괜히 범법자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다. 정신과 전문의들 사이에는 “알코올 의존 환자의 입원치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우선 강제입원을 피하자”는 분위기다. “알코올 의존 환자가 가족들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경우 입원을 거절한 의사로서 책임 소재 등이 문제가 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는 하소연부터 “환자들이 대거 퇴원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야 법이 바뀔 것”이라는 자조적인 발언도 터져 나오고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 중에는 술에 취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올 초에는 한 40대 남성이 정신과에 가서 알코올 의존 치료를 받으라는 아내의 말에 격분해 흉기로 아내를 찌르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지난 4월에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던 60대 남성이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아내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당수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본인 스스로가 알코올 의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기존 법에서는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전문의의 소견이 있고 민법상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를 얻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했지만, 개정법에 의하면 현재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정신질환이 있고 동시에 자·타해 우려가 있는 경우라야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그런데 알코올 의존 환자는 입원 당시에 자·타해 우려가 있었다 하더라도 술에서 깨고 나면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알코올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를 진단받은 환자 수는 7만 명이 훌쩍 넘는다. 음주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이슈다.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보기보다 개인의 의지에 맡기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문제지만, 국민 정신건강의 안전망이 되어야 할 관련법마저도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지 더욱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에는 이견이 없지만, 궁극적으로 정신질환의 치료에 어느 정도까지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필요한지 관련 부처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오는 22일을 시작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의 바람직한 재개정을 위한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이 같은 노력이 의료인들만의 볼 멘 소리로 끝나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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