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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코드판, 수첩, 필름이 다시 사랑받는 이유
전 세계 레코드 시장 10배 성장, 공장 증설 바람
몰스킨 노트 실용성과 기능성에서 디지털 압도
후지필름 디카 참패 뒤 즉석필름으로 회생
아날로그의 감성과 터치에 새로운 시장 형성
지역 경제 활성화…포스트디지털경제 모델 제시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얼마전 국내 생산라인이 중단된 LP음반을 제작하는 공장이 13년만에 부활했다. LP 음반 판매량이 매년 15~20% 정도 성장하면서 독일 등지서 수입해오는 데 따른 비용상승과 공급 부족으로 아예 공장을 지은 것이다. 레코드판의 인기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시장은 10배 커지고 새 공장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최근엔 필름 카메라의 인기도 되살아나고 있다. 아날로그의 대명사 펜과 종이노트도 유행이다. 아날로그의 종말을 고해야 할 시점에 왜 이런 역주행이 벌어지는 걸까.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거나 온라인의 보완재로 벌어지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색스는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에서 아날로그 제품과 아이디어의 가치상승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디지털이 아닌 물건이나 아이디어가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주장은 자칫 기술 반대주의자의 어깃장 정도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아날로그 현상이 향수나 복고가 아니라 디지털과 경쟁해 훨씬 나은 만족이나 결과물을 주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비용과 효용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아날로그의 반격을 알린 저자의 첫 탐사 현장은 내슈빌 유나이티드 레코드 프레싱 (UPP)공장이다. 2010년 하루 평균 몇 천장을 겨우 생산했던 공장은 4년 후엔 매일 4만장을 찍어내는 곳으로 변했다. 직원도 세 배나 늘렸지만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공장을 늘렸다.

저자는 음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오며 사람들이 LP로 회귀하는 이유를 문화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하나는 레코드판이 음악환경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휴면기에 들어갔지만 결코 생산을 멈춘 적이 없으며 수억장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을 꼽는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레코프판을 고사시킨 주인공 디지털에 있다. 아이튠즈에 담아둔 음악목록이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는 아무런 취향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저 0과 1로 이뤄진 데이터일 뿐이다. 사람들은 손으로 만지고살펴보고 싶어한다. 실체를 통해 비로소 소유했다는 느낌과 자부심을 갖는다. 레코드판의 주소비층이 18~24세라는 영국의 연구보고서는 바로 이런 아날로그 바람이 나이 지긋한 복고풍 추종자의 헛바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매년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멋과 실용성의 맨 앞을 뛰어다니는 전세계 트렌트세터들이 모이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필수 아이템 중 하나는 몰스킨 노트다. 전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몰스킨 노트가 들려있다. 이들은 출품작들을 둘러보면서 짧은 메모를 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한다. 심지어 종이없는 세상을 구현하는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도 몰스킨을 끼고 산다.

종이의 반격이라 할 이런 현상을 저자는 아날로그 기술이 특정 영역의 아주 실용적 수준에서 디지털 기술보다 더 뛰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디지털화에 따라 어떤 영역에서는 종이의 사용이 줄었지만 그 외의 목적과 용도로는 종이의 감성적, 기능적, 경제적 가치가 증가한 것이다. 창의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본원적 욕망과 감성적 터치, 전원이나 부팅, 동기화가 필요없는 기능성 등이 종이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은 하루게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용법을 익혀야 하지만 종이노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종이산업은 그래도 디지털시대에 잘 버텨나간 쪽에 속한다. 아예 ‘폭망’한 업종은 필름이다. 디지털카메라의 즉흥성, 자동화, 공유능력, 비용은 필름 카메라와 비교해 결정적이어서 추세에 적응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추락했다. 그런 필름이 최근 즉석 필름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한때 퇴출위기까지 갔던 인스탁스는 2012년에 160만대, 2014년 460만대, 2015년에 600만대를 팔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후지 필름의 디지털카메라 매출이 스마트폰 때문에 급감했던 2014년에 후지필름을 구해준게 바로 필름이란 사실은 아이러니다. 영국의 흑백필름 전문회사 일포드도 새로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과거 생산량의 1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필름을 생산하는 코닥조차도 최근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아날로그의 가치와 경쟁력은 무엇일까. 색스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즐거움‘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색스 자신도 자신의 동네에 생긴 한 레코드점에서 레코드판을 사기 시작한 경험을 “냅스타에서 음악을 다운로드 받기 시작한 이후 잠들었던 내 안의 무언가를 깨웠다.”고 말한다.

또 다른 아날로그의 장점은 승자독식이 아닌 균형이다. 저자는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이 하나 더 생기는 것 보다 작은 레코드점이나 시계공장이 들어서는 것이 지역경제에 더욱 넓고 크고 분배적인 이윤과 활력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포스트디지털 경제의 모델로까지 내세우는 이유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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