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정재승이 통영을 여행하면서 각자의 ‘지식’을 풀어놓았지만, 단순한 지식 나열이 아니라 어느 순간 수다와 유머, 잡학의 경계를 오가게 돼 몰입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인문학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인문학과 지식이 멀리 있거나 높은 곳에 있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를 인문학의 전체나 본체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지식이 재미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는 단순 지식 나열을 넘어 4명의 전문가들의 지식과 의견이 부딪치면서 주는 수다적인 재미다. ‘인문학 어벤져스’라는 말이 부담없이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것 때문이다. 특히 4명의 잡학박사들은 개성이 확실해 뚜렷한 캐릭터를 보여주며 앞으로 관계가 주는 재미도 클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은 다변(多辯)이다. 거의 모든 주제에 반응한다. 18시간 녹화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입운동을 한다고 한다. 카메라가 꺼졌는 데도 호텔로 돌아와 수다를 떨 정도다. 집단 패널체제에서 너무 말을 많이 하면 비호감이 되기 쉽다.
하지만 유시민은 가르치려 하는 교수나 평론가형이 아니라 해설가형인데다 유효타가 많아 그의 ‘지식소매업’에는 손님이 많이 찾을 것 같다.
첫 회에만도 유시민이 터뜨린 유효타가 적지 않다. “자연이 진공을 허용치 않는 것처럼 권력도 공백을 허용치 않는다” “네루의 세계사편력에 영국군 200명이 인도에 들어와 태수를 잡아가는데 그 옆에서 농부들은 밭을 갈고 있었다. 거대한 인도가 망한 이유다.” 또한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건 생물학적 근거가 없고 부계보다 모계가 더 맞을 수 있다”라고 말해 호주제의 허구성을 공격했다.
유시민은 다루는 주제가 실로 광범위하다. 정치, 경제, 역사, 문학, 상식.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얘기하니 “이를 적자생존(적어서 생존한다)”이라는 아재개그를 투척하고, 장어가 양식이 되지 않는 이유를 심해로 들어가 추적이 안되는 장어의 생태 이야기로 기막히게 설명한다. 박경리의 ‘토지’를 설명하면서 “인간사회에는 두 종류의 악이 있다. 제도가 만들어내는 악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악이 있다. 제도적 선악과 개인적 선악은 차원이 다르다. 그것을 박 선생님은 연민으로 봤다”고 말했다.
4명은 각각 전문영역이 있지만 유시민은 음식(물고기), 문학 등에도 걸쳐있다. 그래서 맛컬럼니스트인 황교익과는 약간 부딪쳐 재미를 발생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황교익이 이순신은 “왕에 충성한 거다”라고 하자 유시민이 “아니다. 왕에 충성했다면 선조가 이순신을 그렇게 질투했을까? 이순신을 충신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 이순신의 인기가 왜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살펴볼만하다”고 맞받아쳤다. 유시민과 황교익은 특히 음식과 낚시(물고기)에 관해서는 기싸움을 할 것이라고 제작진이 귀띔했다.
하지만 김영하와는 나이 차이가 많은데다, 김영하가 필요한 이야기, 영양가 있는 이야기만 하고 빠져나오기 때문에 유시민과 부딪치지는 않았다.
김영하는 토크의 고수이자 받아서 얹기의 명수다. 이순신이 인기 있는 이유를 문학적으로 캐릭터 분석을 하면서, “충분한 고통, 분명한 목표, 적어도 한번의 기회”로 설명했다.
정재승이 왜 대도시에 사람이 몰리냐를 설명하면서 “도시에 사람이 10배 늘어나면 도시의 창의성(예술작품이나 특허 수)이 17배나 늘어난다”는 사실을 제프리를 인용해 말하자, 김영하는 “외딴 곳에 있는 클럽보다 홍대클럽에 가야 경쟁자가 많아도 복잡하고 더 많은 상호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정재승은 과학을 과학으로만 얘기하지 않고, 때로는 문턱을 낯춰 의외성으로 빵 터뜨린다. 정재성은 장어와 정력과의 과학적 관계를 묻는 질문에 “정력은 그렇게 함부로 올라가지 않는다” “플라시보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마세요”라고 응수하고, ‘사랑을 느끼는 뇌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냐”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펑셔널 MRI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산호초 근처에 물고기가 몰리는 이유와 사람들이 도시에 몰리는 현상을 말하면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상호작용해 창의성이 생기니 이질적인 사람들을 모이게 하면 된다. 김춘수, 윤이상, 박경리... 이렇게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서로 자극도 주고받고, 예술적 부흥이 일어난다”는 중요한 말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 53년간 지구에 살면서 숨쉰 총량을 계산해 지금 우리가 그 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음을 아보가드로의 법칙이라는 팩트체크를 통해 알려주었다.
황교익의 장어 설명도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붕장어, 갯장어(하모), 뱀장어, 꼼장어라고 불리는 먹장어가 있다고 말하고 먹장어는 원래 장어과가 아니라 지렁이 종류라고 했다.
‘알쓸신잡’은 인문학을 대중화하거나 인문학을 상품화한다는 거창한 말보다는 자기 분야와 자기 세계가 확고한 사람들이 풀어놓는 수다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잡학 이야기들이 부딪쳐 새로운 영감과 통찰이 나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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