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비정규직 갈등 표면화] 대화·소통 대상서도 열외…‘벙어리 냉가슴’ 앓는 재계
몸사리고 관망하고 알아서 기고…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 성찰과 반성부터 해야(문재인 대통령), 무소불위의 재벌공화국,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땀 흘린 대가가 땀 흘린 사람에게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이치(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총발(發) 비정규직 발언’의 파장이 신정부의 ‘재벌 길들이기’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재계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무분별한 재벌개혁’ 등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에, 재계는 잔뜩 움츠렸다.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재계=말 한마디에 대통령부터 각료, 여당 의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은 경총은 29일 표면적으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속내는 재계를 대표해 최저임금 포함 노사관계를 주관하는 핵심 기관을 향한 정부 여당의 기선제압 식 기습공격에 할 말을 잃었다는 침통함이 가득하다.

무조건적인 정규직화가 아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축소가 관건이라는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말을 “일자리 문제 핵심 당사자인 경총의 목소리로는 적절치 않다”며 일축한 정부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끓고 있다.

다른 경제단체나 개별 그룹, 기업들도 비슷한 모습이다.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부총리 등 경제 관련 핵심 내각 인선 발표 후 훈훈했던 ‘허니문’도 채 몇일이 안돼 싹 사라졌다. 지배구조 개선 및 공정 거래 등에서 나름 재계의 현실적인 상황과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신임 각료들의 말도 지금으로써는 ‘빈 말’로 밖에 받아드릴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은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할 수나 있겠나”는 한 경제단체 관계자의 발언은 이런 냉냉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촉발된 새 정부와 재계의 급랭에 대해 개별 기업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반성하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거기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입장 표명 자체가 부담이라고 움츠렸다. 집권 초 투자 활성화과 고용 확대 등을 위해 재계의 협력을 적극 당부했던 과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에 대한 당혹감이다.

기업들의 반응은 일단 ‘몸사리기’로 요약된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관망 중”으로 현 분위기를 요약했다. “알아서 기라는 뜻인지, 진짜 재계와 한바탕 하려는건지 모르겠지만, 마찰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수 밖에 없다”며 정부의 의중 파악에 나섰다. 몇일 사이로 달라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발언이, 재계의 심리를 냉각시켰다는 것이다.

▶소통에서 재계는 예외? 불통 불만도=집권 초기부터 엇갈린 시그널을 보낸 정부와 청와대에 대한 재계의 속앓이는 ‘불통’에 대한 불만과 답답함으로 요약 가능하다. 지난 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소통과 타협을 소리높히고 출발한 새 정부의 기조가, 재계한테만은 예외라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은 정부, 가계와 함께 분명한 경제 주체고, 고용과 투자를 기반으로 국가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활을 하고 있는 조직들”이라며 “재계를 배제하고 정부와 가계만으로 경제 발전을 이끌어내겠다는 시도는 이미 실패했음을 근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새 정부의 노동 정책에 나름 적극 호응하고 나선 개별 기업들에서도 불만은 나왔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협력사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나선 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라면서도 “새 정부의 눈치도 마침 보이니 실행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과정이라는 지적도 함께했다. 이 관계자는 “정확한 직무 분석, 동종 업종에서도 있는 기업간 임금격차, 또 업무 특성에 따른 협력사 및 비정규직의 존재 필요성 등 노동 문제와 연관된 다양한 변수와 관련된 조언이나 반론 등을 무시한 채 이뤄지는 일방통행 정책 압박은 결국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보다 책임있고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현실을 무시한 ‘불통’으로 일관한다면, 과거 고용안전 확보를 위해 시행했던 계약직의 최소 채용기간 연장 정책이, 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알바, 경비원 해고 사태를 불러왔던 부작용을 다시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충고다.

최정호ㆍ배두헌 기자/choij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