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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을 위한 행진곡‘, 우리가 모르던 것들 Q&A
[헤럴드경제=이슈섹션]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취임 후 첫 공식 기념행사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9년 만에 제창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합니다”라며 노래의 의미를 되새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유족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이자, 광주 시민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노래이고, 광주의 혼이 담긴 노래다.

우리가 몰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Q&A로 풀어본다.

문재인 대통령(왼쪽 다섯째),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오른쪽 둘째)은 입을 다물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Q. 어떻게 만들어졌나?
A. 전두환 정권은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민주항쟁을 무력으로 진합하고 권력을 잡았다. 1주년을 맞은 1981년 5월 19일 광주에 살던 소설가 황석영과 전남대생 김종률 등 문화패 15명은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황석영의 집에 모였다. 이들은 5·18때 희생된 청년노동자와 여대생의 넋을 달래주는 내용의 노래극을 구상했다. 고 윤상원,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에 헌정하는 노래극이었다. 윤상원은 5·18때 계엄군에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이었고 박기순은 1979년 사망한 노동운동가였다. 두 사람은 생전 연인 사이였다. 황석영과 문화패는 대본과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끝냈다. 이렇게 해서35분짜리 노래극 ‘광주에 살던 어느 두 젊은 넋의 죽음과 사랑에 관한 노래 이야기’ 테이프가 만들어졌다. 노래극의 대미를 장식한 합창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곡은 김종률이 썼고 가사는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서 따왔다.

Q. 노래 가사는?
A.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Q. 어떻게 알려졌나?
A.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는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합장이 됐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이때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래는 구전과 악보를 통해서,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졌다. 매년 5월이 되면 쓰러져간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전국에서 불러졌다.

Q. 왜 소중한 노래인가?
A. 노동현장에서 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 이 노래는 민주주의 투쟁의 동의어가 되었다. 시민들은 이 노래와 함께 1980년대를 살았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는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기정씨가 아들의 재를 뿌리며 불렀다. 6월 민주항쟁때 서울 시청 앞에 모인 100만 명의 시민학생들은 이 노내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Q. 9년만에 제창하기까지는?
A . 1997년 518 기념일은 국가기념일로 승격됐고 이 노래는 광주 원혼들을 달래는 넋풀이 노래로 채택됐다. 2008년까지 공식 식순에 포함돼 제창됐다. 하지만 2009년부터 합창으로 바뀌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제창으로 채택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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