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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라미드·미이라 아닌…다른 ‘이집트 예술’을 만나다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展
한발 앞선 몽환적 초현실주의
탈서구적 근현대미술 존재감

빈곤·폭압등 아픔 예술로 승화
시간순서 따라 5개파트로 전시


‘미이라’와 ‘피라미드’가 없는 이집트 미술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2017년 덕수궁관 첫 전시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전을 4월 28일부터 개최한다. 전시에는 이집트 근현대미술사는 물론 국제 초현실주의계에 큰 획을 그은 이집트의 초현실주의 회화, 드로잉, 사진, 조각 등 166점이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샤르자미술재단, 이집트 문화부, 카이로아메리칸 대학이 협력했다.

‘몽환적’, ‘상징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초현실주의도 쉬운 주제는 아닌데, 이집트 초현실주의는 한발짝 더 나갔다. 제국주의시대 열강의 세력다툼 속 일그러지고 뒤틀린 근대 이집트의 사회적 변화가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개막을 앞두고 서울을 찾은 샤르자재단 후르 알 카시미(37) 공주는 “초현실주의는 중동, 남미, 아시아에도 널리 퍼져있으며, 이집트 초현실주의 미술은 시대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예술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며 “이번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를 서구열강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식민지적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기획됐다”고 말했다.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도 “근현대미술은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며, 서구에 한정해 근현대미술사를 논할 수는 없다”며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근현대미술이 있고, 한국에 또 다른 모더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전시 제목에 나오는 1938년과 1965년은 이집트 현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을 이끌었던 그룹인 ‘예술과 자유그룹’과 ‘현대미술그룹’을 상징한다. ‘예술과 자유 그룹’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두한 초현실주의에 영향받아 이집트에서 초현실주의 운동을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갔다. 이어 나타난 ‘현대미술그룹’은 1946년부터 1965년까지 예술이 현대국가로서 이집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믿고 서구의 학구적 예술교육을 비판하며 이집트 국민의 일상, 빈곤과 억압을 주로 묘사했다.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를 시간순서에 따라 5개 파트로 나누어 살펴본다. 1부 유럽에서 시작한 초현실주의가 이집트로 전파되는 과정에선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유럽의 초현실주의와 똑 닮은 사조를 만나게 된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있는 등 도상적 차이 외엔 ‘이집트 초현실주의’다 싶은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폭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친 이집트의 역사가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대의 아픔을 예술 운동으로 승화시킨 이집트만의 초현실주의가 전면에 부상하는 것이다. 특히 열강의 식민시대를 거치며 가장 핍박받았던 계층인 여성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여성은 아름다움이나 모성의 대명사가 아니라 서구열강의 약탈과 수탈로 인한 피폐함, 즉 이집트 자신을 상징한다. 카밀 알텔미사니의 ‘앉아 있는 누드’가 대표적이다. 울고 있는 여인의 무릎엔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커다란 못이 박혔다.

더불어 ‘초록색 피부’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집트만의 특성이다. 박주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초록은 예부터 신의 색이었다. 작가들은 ‘무엇이 더 이집트적인가’를 고민하며 전설과 민담을 모티브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 중 대대수가 지난 50년간 한번도 이집트 바깥에 공개되지 않았던 문화재급 작품으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집트 근현대미술의 복잡하고 미묘한 이야기를 탈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으로 풀어내겠다는 이번 전시는 여전히 한국 관람객에겐 낯선면이 있다. 그러나 전시를 보는 내내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어렵고 낯설다’는 편견보다, 이미 서구미술에 젖은 내 자신의 시각이다. 7월 30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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