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선의 특징은 ‘진보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보수진영 대표선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아온 이들도 대선 레이스에 올라타지 못하고 줄줄이 포기했다. ‘문재인 대세론’에 가장 큰 변수를 가져다준 이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 전 총장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대항마로 떠오르며 지지율 1~2위를 다퉜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녹록치 않았다. 의욕만 앞선 대권 행보는 잦은 실수를 낳았고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서 반 전 총장은 출마 선언 20일만인 지난 2월1일 전격 사퇴했다.
반 전 총장으로 쏠렸던 보수층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갈아탔다. 황 권한대행의 일거수일투족은 ‘대권 행보’로 해석됐다. 황 권한대행은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숱한 질문에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묵언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지율이 계속 오르자 보수진영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심판이 선수로 뛴다’고 비판받던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3월15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경선에 도전했던 잠룡들의 셈법도 복잡했다. 손학규 전 의원은 10년 가까이 몸 담았던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손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ㆍ박근혜 후보에 밀려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바 있다. 손 전 의원은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서 안철수 후보와 맞붙었지만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킹메이커’였던 김종인 전 의원은 ‘킹’으로 나서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석현 전 중앙일보ㆍJTBC 회장 등과 제3지대를 모색하다 무산됐다. 이어 문재인ㆍ안철수 후보를 힐난하며 독자 출마했지만 여론은 외면했다. 김 전 의원은 출마 선언 일주일 만에 불출마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김 전 의원은 현재 안철수 후보를 돕고 있다.
‘호걸(豪傑)’도 탄생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그동안 안 지사는 ‘차차기’ 도전자로, 이 시장은 ‘변방 장수’로 잠룡 축에 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열망 속에 각각 ‘대연정’과 ‘대개혁’을 주창하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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