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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흐릿한 CCTV 하나로”…40대 가장의 억울한 7개월 옥살이
-피의자 지목 유도…증거 채택 안 돼
-증거물 ‘피해자 옷’ 오염…관리 부실
-경찰 “오래전 일이라 기억 잘 안 나”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던 40대 가장이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석방됐다. 재판부가 수사기관이 제시한 증거물 대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에서도 잘못이 드러나며 피고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은 7개월 동안 구치소에 있어야만 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31일, 피해자 이모(33ㆍ여) 씨는 출근시간대인 오전 8시께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괴한은 피해자가 차에 타려는 순간 뒤에서 다가와 “조용히 해”라며 목에 흉기를 댔다. 그러나 이 씨가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서 범인은 그대로 도주했다. 이 씨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지만, 피의자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 심형섭)는 지난 14일 이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신빙하기 어려워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며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사진=123rf]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보름 뒤 용의자를 체포했다. 퀵서비스 배달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모(47) 씨였다. 사건 현장 인근에서 이 씨가 주차하는 모습을 확인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사건 현장의 CCTV 영상에 나타난 용의자의 모습과 이 씨가 닮았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던 돈을 받으러 상가에 방문했었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체포 직후 “50m도 넘는 거리에서 흐릿하게 찍힌 영상만으로는 비교 가능한 부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경찰은 “피해자가 이 씨의 뒷모습과 목소리를 알아봤다”며 그를 구속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도 경찰의 수사가 잘못됐다는 변호인의 주장이 인정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 씨의 변호를 맡은 김준 변호사는 “경찰은 피해자에게 이 씨와 다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주자 이 씨를 지목했다며 이를 증거로 제출했지만, 당시 사진을 보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점을 바로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피해자와 키가 10㎝ 이상 크거나 몸집이 큰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키는 169㎝에 마른 체형’이라는 피해자의 진술을 미리 확보한 경찰이 누가 봐도 구별 가능한 비교 대상을 두고 피해자에게 이 씨를 지목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목소리 대조 과정에서도 잘못이 드러났다. 피해자가 최초 진술 때 “누가 범인인지 확신을 못 하겠다”고 진술하자 경찰은 이 씨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자 피해자도 “뒷모습을 보니 범인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범행 25일이 지난 시점에서 목소리를 선별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피해자도 피고가 범인임을 확신할 수 없다고 진술했었다”며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은 피해자의 옷에 범인의 DNA가 있다며 추가 증거를 제출했지만, 이마저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국과수의 분석 결과, 이 씨가 아닌 다른 남성의 DNA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그제야 경찰은 법정에서 “수사관의 땀이 묻어 증거가 오염된 것 같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증거물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찰이 억지 증거를 제출했던 셈이다. 옷에 묻은 흔적이 진범의 DNA일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 심형섭)는 지난 14일 이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신빙하기 어려워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며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 씨는 이날 법원의 무죄 선고로 7개월 동안의 옥살이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동종전과조차 없었던 그의 구속으로 아내는 그동안 공장에 나가 일을 하는 등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했다. 검찰은 선고 6일 뒤인 지난 20일 법원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검찰 관계자는 “CCTV 영상이 조금만 더 선명했더라도 무죄 판결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재판부도 이 씨의 범행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어 항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지적된 문제에 대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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