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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시 D-3, 노량진 청춘들 ①] “여기선 친구 없는 게 낫다”…외로운 막판 싸움
- 9시 수업에 새벽 5~6시 자리 맡기
- 週 80~90시간 공부해야 합격 희망
- 외로움에 울지만 주변엔 경쟁자 뿐

[헤럴드경제=원호연ㆍ손지형 기자] 결혼도, 연애도, 출산도 포기한 N포세대에게 남은마지막 ‘신의 직장’ 국가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공시생(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메카 노량진 학원가는 오늘도 적막 속에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남은 72시간, 이들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동도 트기 전인 새벽 5시, 노량진 역을 지나는 공시생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각자 이어폰을 귀에 꽂거나 책을 보면서 길을 걷기도 한다. 

노량진 공시생의 하루는 5~6시에 학원 자리 맡기로 시작한다. 노량진역 출구를 나와 학원으로 향하는 공시생들. [사진=손지형 기자/consnow@heraldcorp.com]

한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 1층 로비 바깥에는 5~6명의 공시생이 새벽 찬 공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서 있다. 굳게 닫힌 학원 문이 열리는 시간은 5시 50분. 이지은(22)씨는 “줄을 선 순서대로 들어가 자리를 맡을 수 있어 일찌감치 나와야 한다”며 “수업은 9시에 하지만 6시에 확인 도장을 받아 앉고 싶은 자리에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6시 반이 되자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와 노량진역 출구, 승합차 등이 학생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각자 학원과 독서실이 있는 방향으로 흩어졌다.

노량진 공시생의 하루는 5~6시에 학원 자리 맡기로 시작한다. 막판 기출문제 풀이 특강이 진행되는 강의실. [사진=손지형 기자/consnow@heraldcorp.com]

한 학원 7층에는 상위 5%의 평균 학습시간이 스크린에 떠있다. 7급 공무원 응시생은 1주일간 약 92시간, 9급 공무원 응시생은 약 81시간을 공부했다는 문구가 떠 있다. 올해 4910명을 뽑는 이번 시험에 22만8368명이 응시, 경쟁률은 46.5 대 1이니 최소한 1주일에 법정근로시간의 두배인 80~90시간은 공부해야 승부라도 걸어볼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시간 24시간 열려있는 한 카페에는 또 다른 무리의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한 학생은 옆 동료에게 “오늘 밤을 샜는데 이 정도는 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지칠대로 지쳤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야하는 이들은 이맘때면 합격자 선배들의 무료 수험 상담을 듣거나 대강의실에서 진행되는 60일 모의고사 풀이반 수업을 듣는다. 일반행정직을 준비하는 김소라(26) 씨는 “작년에는 비용때문에 무료 인강으로 준비했지만 불안해서 학원을 다니게 됐다”며 “이곳에 와보니 내 공부 양과 내용이 많이 부족했음을 느꼈다”고 후회했다. 

이제는 노량진 명물이 된 컵밥은 앉아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기도 바쁜 공시생들의 ‘초조함’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다. [사진=손지형 기자/consnow@heraldcorp.com]

이들을 압박하는 것은 공무원 시험이 마지막 벼랑이라는 절박함이다. 이번이 두번째 도전이라는 김모(28) 씨는 “같이 공부하는 누나는 은행에 다니다가 왔고 다른 형도 대기업 다니다가 재작년부터 공부를 한다”며 “처음에는 취업이 어렵다 해서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장난이 아니구나 싶다”고 했다. 

그러나 서로 같은 처지의 공시생끼리도 이같은 두려움을 털어 놓기는 어렵다. 동료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험장에서는 제쳐야하는 경쟁자이기 때문. 건축직렬을 준비하는 이모(26) 씨는 “주말 내내 아파서 시험직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너무 속상하다”면서도 “여기엔 친구 자체가 없어서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없다. 그게 차라리 낫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빨리 붙어서 여기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끝냈으면 좋겠다”며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지는 학원 문을 열고 발걸음을 옮겼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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