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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망리단길, 그 빛과 그림자
장미여관의 리드보컬 육중완이 슬리퍼를 신고 망원시장을 활보하며 닭강정을 사먹는 장면이 MBC <나혼자 산다>에 방영된 후 망원동은 새삼 주목받았다. 그 닭강정집은 tvN <수요미식회>에서도 또 <프리한19>에서도 소개되었다. 방송이 나간 후 명소가 된 그 가게는 이 방송들에 나왔던 장면들을 캡처한 사진이 들어있는 커다란 플래카드로 도배가 돼 있다. 그리고 주말이면 이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이더니 이른바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의 새 길이 생겼다. 이태원의 명소가 된 경리단길에서 따온 이름이다. 옛 건물들 속에 개성 있는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선 경리단길처럼 망원동의 망리단길도 맛집과 카페들이 생겨나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말이면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연남동길 등등에 이어 망리단길까지. 최근 도심에 새로운 길들이 생겨나고 그 길들을 중심으로 상권이 재편되고 있는 건 지금 대중들이 길에 대해 갖고 있는 갈증과 무관하지 않다. 70년대부터 최근까지 계속 옛 건물을 밀어내고 말끔한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그 많던 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향수가 그 새롭게 생겨나는 길들 속에는 녹아들어 있다. 포크레인이 밀어냈던 건 그저 낡은 옛 건물들이 아니라 그 곳을 지나다녔던 사람들의 추억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까닭이다. 그래서 이렇게 새로이 생긴 길들의 상점들은 새로운 건물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옛 점포들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새롭게 단장하는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지금 망원시장에서는 주민들이 나서서 망리단길이라는 지칭을 쓰지말자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몰리고 동네가 활기를 띄게 되면 주민들이 좋아할 법 하지만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라는 것. 겉보기에 당장 활기를 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곳에 본래 터전을 삼고 살던 원주민들은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망원동에서 40년간이나 사진관을 해오던 털보아저씨는 결국 가게를 접기로 했다. 본래 80만원이던 월 임대료가 200만원으로 치솟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일찍이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명명한 바 있다.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비교적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 지역에 진입해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동네의 활기가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자본이 들어오면서 생겨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그 곳에서 터전을 삼고 살아왔던 이들은 동네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망리단길 반대 운동을 하는 이들 중에는 경리단길에서 따온 그 이름이 ‘자본의 욕망’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임대료와 집값만 거품처럼 잔뜩 올려놓고 자본이 빠져나가게 되면 결국 그 곳 주민들이 나머지 피해를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길이 생겨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길이 갖고 있기 마련인 사람들의 온기와 시간의 더깨를 오래도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본의 욕망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될 때 과연 그건 진정한 길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길들이 마냥 반갑게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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