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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이성계 능의 억새풀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는 함경도 함흥에서 30㎞ 가량 떨어진 영흥에서 태어나 자라고 청년 때 까지 활동했다.

통일신라 이후 이 지역을 여진이 가장 오래 지배했으니, “여진족 출신”이라는 주장이 틀리지 않다. 여진은 고구려 발해의 후예이다. 전주 본관은 임금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자춘-이성계 부자(父子)는 원나라 세력이 약해지자 한반도 북부에 있던 이들을 몰아내고 함경도 일대에 독자 세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려 공민왕이 함경도 일대를 동북면으로 칭하고 이자춘을 동북면 병마사로 임명한다. 


여기서 ‘면’은 광역단체 몇 개를 합친 규모로 크다.

이성계는 함경도 사람들 입장에선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의 조선 개국은 고구려의 후예인 여진과 고려의 통일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스코틀랜드 출신이 잉글랜드, 웨일즈까지 지배하는 대영제국의 황제가 된 격이라고나 할까.

그가 큰 출세는 했지만, 개경과 한양에서의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음모와 배신, 자식들의 골육상쟁을 지켜보던 이성계는 왕위를 내 준 뒤 함흥에 궁궐을 따로 차렸다. ‘함흥차사’를 빚은 그 궁이다. 자식들 성화에 못이겨 한양으로 돌아온 뒤 죽을 때가 되자, 함흥을 그리다 그곳에 묻어달라는 유언까지 남긴다.

하지만 골육상쟁의 주인공 태종 이방원은 정치적 목적상, 유지를 받들지 않았다.

고구려 자취로 가득한 구리에 아버지의 장지(건원릉)를 정한 이방원은 봉분만 함흥 억새 ‘청완(靑)’으로 조성했다.

매년 4월초 한식이 되면 봉분 덮은 억새를 자르는 ‘청완예초의(刈草儀)’가 진행된다. 올해 제관 중에는 공모로 선발된 국민 6명도 들어있다.

이성계도 권력다툼으로 점철된 인생을 마감하면서 고향을 갈구했다. 건원릉 ‘예초의’는 권력의 무상함, 수구초심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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