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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이 책!] 모두가 극찬한 ‘마지막 문장’…‘작은 걸작’이 주는 충격과 감동
처음 ‘동급생’의 번역 원고를 받아 들었을 때, 몇 줄 읽지 않아도 이 작품은 슬플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배경은 1930년대 독일. 우리는 히틀러가 곧 권력을 움켜잡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것임을 안다. 그런데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우정이라니, 어떻게 끝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서문과 추천사를 쓴 작가들은 입을 모아 마지막 문장을 극찬하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니, 대체 어떤 결말이길래.

이야기는 어느 날 한스의 반에 우아한 전학생 콘라딘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두 소년의 우정은 깊어 가지만, 비극 역시 성큼성큼 다가온다. 결국 그 엄청난 반전의 결말에 이르러,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원고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스는 그렇게 콘라딘을 다시 만났구나. 30년이 넘게 만나지 못한 소중한 친구를. 그렇게 마지막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갔다.


이 마지막 문장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도 고스란히 감동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가능한 꼭꼭 숨기려 했지만 마케터, 디자이너… 책을 만들며 함께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결말을 알려줘 버리는 상황이 발생했고,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스포일러’가 되어 버렸다. 같은 팀에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편집자도 있었다. “그 마지막 문장이 너무너무 궁금해서, 결국 몰래 마지막 페이지만 봤어요. 다른 부분은 하나도 안 읽었는데 단 한 줄만으로도 마음이 옥죄어 오더라고요.”

특히 결말과 관련해서 번역자와 통화를 자주 했는데, 통화 내용을 누가 듣기라도 할까 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아예 그 문장을 미리 공개해서 오히려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끌어들이자는 파격적인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검색창에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을 검색하면 ‘동급생 결말’, ‘동급생 마지막 문장’이 연관 검색어로 뜨는 걸 보면 다들 궁금하긴 한가 보다. 아무튼 마지막 문장은 드러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다. 그 문장은 이 짤막하고도 긴 이야기의 마지막에, 바로 그 순간에 읽어야 하기에.

‘동급생’은 길지 않은 중편소설이다. 그래서 1977년판 서문을 쓴 아서 케스틀러는 이 작품을 ‘작은(minor) 걸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작가 프레드 울만은 원래 독일의 중산층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파시즘을 피해 유럽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다 영국에 정착한 화가이다. 그는 주인공 한스와 똑같은 곳에서 태어나, 비슷한 학교에 다녔고, 사랑하는 고향을 떠나야 했다. 편집하면서 이 작품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 다르게 읽히는 문장이 좋았다. 화가가 캔버스에 물감을 채워 넣듯 짧은 분량에 채워 넣은 슬픔과 기쁨, 감동과 추억을 곱씹을 수 있었다. 편집자로서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다.

해외에서 유명하고 많이 팔린 책이라도 한국에서 외면받는 일은 빈번해서, 이 책을 독자들 앞에 내놓을 때 무척 조마조마했다. 이제 출간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매일 꾸준하게 독자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다. 이 ‘작은 걸작’이 주는 충격과 감동을 더 많은 독자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열린책들 문학팀 편집자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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