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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영화감독도 오페라 ‘놀이터’서 놀 수 있게”
“전용극장·단체 없다고 제대로 된 공연 못하나…성숙·발전 단계 밟는 중”…오페라 대중화 앞장 김학민 국립오페라단장

“레퍼토리 시즌제요? 사실은 숙제를 다 못하며 사는 기분입니다. 학력고사를 다시 치는 꿈도 꾼다니까요”

2015년 7월 단장에 취임했으니, 3년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헤럴드경제는 임기 절반을 지낸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지난 2월 오페라단 단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못다한 일이 너무 많다며 임기 절반의 소회를 밝혔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추진력으로 국립오페라단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평이 무색하게도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못하고 있다.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가며 실현 시켜야 하는데…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임기 절반을 지난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시도 해보고 싶은게 너무 많아 24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오페라가 지휘자 시대에서 연출자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며, 지금 이 시대의 사회ㆍ문화ㆍ정치적 면을 담아내는 오페라가 대중성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김학민 단장 취임이후 국립오페라단은 말 그대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가장 변화는 레퍼토리 시즌제의 도입이다. 기존의 1월~12월 체제를 외국 유수의 오페라단처럼 9월∼이듬해 6월로 바꿨다. 프로그램도 대중적 작품, 숨겨진 좋은 작품, 파격적 작품으로 각각 나누고 3분의 1씩 고루 돌아가도록 했다. 2015-2016 시즌의 첫 문을 연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는 한국 초연이었음에도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이어 드보르작 오페라 ‘루살카’, 비발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도 초연으로 선보였다. 물론 ‘라 트라비아타’ 등 대중적 프로그램도 있었으나, 연이은 초연 러쉬에 ‘감독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됐다’는 비판도 일었다. 2016-2017 시즌에서는 토스카와 로엔그린에 대한 평가도 호불호가 나뉘었다. 토스카는 원작과 달리 1930년대 파시즘 시대로 배경을 옮겼고, 로엔그린에서는 시간을 지운 무대를 선보였다.

김학민 단장은 “오페라는 지휘자의 시대에서 연출자의 시대로 급속도로 변모하고 있다”며 “낭만 예술, 순수 예술의 상투성에서 벗어나 지금 이 시대의 사회ㆍ문화ㆍ정치적 면면들을 들춰내고 반영하는 시도는 오페라의 대중성 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석이 중요한 오페라’, 살아있는 ‘현장 예술로서의 오페라’라는 21세기 오페라의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는 설명이다.

레퍼토리 시즌제에 대해서도 ‘균형감각’을 중요시했다. 단순히 일년치 공연 라인업을 공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립오페라단의 ‘무기’를 만드는 게 레퍼토리 시즌제라는 입장이다. “언제나 편하게, 제대로 준비된 공연이 바로 ‘레퍼토리’죠. 일년에 6개 공연을 한다 치면, 4개 정도는 예전에 했던 걸 다시 무대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공연을 신작으로 올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예산상으로도 그렇고요. 재공연과 신작이 적절히 섞여야 새로운 시도도 하고, 내공도 쌓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신작도 1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다음해에 재공연 리스트에 포함된다. ‘진주조개잡이’와 ‘오를란도 핀쵸 판초’가 그 대표적 케이스다. “뉴프로덕션을 올리는데 10억 원 정도가 듭니다. 재공연시에는 절반 이하면 가능하죠. 국립오페라단의 특성상 다른 단체에서 못하는 것, 새로운 작품을 해야죠. 그러나 그렇다고 한 번 공연하고 10년이상 무대에 올리지 못한다면 그것도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단체로서 또 다른 의무를 저버리는 겁니다.”

동시에 그는 창작오페라에 대한 고민도 많다. 국내 잔치로만 끝나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해외에 얼마나 실질적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창작오페라를 해외 소개하는 것을 골자로 추진하고 있으나, 실질적 걸림돌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시도를 하는데엔 한국 오페라계의 실력이 무르익었다는 판단에서다. 김 단장은 한국 성악가의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수준급 이상이나, 외국에선 서양인으로 분해야 하니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 했다. “테너 이용훈, 강요섭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악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젊은 라이징 스타일수록 국립오페라단에서 소개하고 키워줘야 외국에서 활동할 때도 대접 받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연출가 양성의 필요성도 한 몫했다. “차를 만들 때 외국엔진 수입해 한국서 만들면 그걸 ‘국산차’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 처럼, 오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의 ‘엔진’에 해당하는 것이 연출가죠.” 한국 오페라의 내적 성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연출가 양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연출가 한 명에 그치지 않고, 무대, 의상, 조명까지 모두 성장할 수 있어서다. 그는 “오페라 연출만 하던 사람을 연출가로 키워야 하는 이유는 없다. 연극이나 영화감독까지 영입해 오페라 놀이터에서 놀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전용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소속 단체가 없는 오페라단으로서 한계도 절감하고 있다. 하드웨어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각각 단체들과 조율하며 동시에 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엔 현실적 어려움도 존재한다. “국립오페라단이 제대로 된 소속단체도 없이 오페라단이냐고 볼 수도 있지만, 성숙과 발전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성장의 단초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단장의 사무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업무를 보는 책상이 두 개, 컴퓨터 스크린만 세 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해외 유수 오페라단의 공연 DVD와 자료가 펼쳐진 가운데 다음 시즌 준비가 한창이었다. “원하는 연출자, 지휘자를 구하려면 사실 1년 전도 늦다”는 그는 “미리 예습해서 공부를 잘하는 방법 밖엔 없다”고 말하며 웃었다. 인간적으로 호소력이 짙은 오페라를, 세련된 대중성으로 무장하고 싶다는 김학민 단장의 다음시즌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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