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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차두현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북한을 제대로 다룰 준비는 돼 있나
지난 2월 13일 일어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의 김정남 피살사건은 북한이 국제적 규범이나 정상적 행동양식의 기준으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비록 김정은에게는 그가 ‘수령’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라고 하더라도, 정적(政敵)의 처리에도 넘지 말아야 할 금도가 있다.

후계자 낙점으로부터 벗어난 그 순간부터 김정남의 운명은 예견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과 혁명가계론을 핵심 통치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정통성의 원천이요, ‘예비수령’ 면허증이었다. 즉, 김일성의 손자요,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신분 그 자체만으로도 김정남은 김정은의 화근 덩어리였다. 더욱이, 그는 김씨 일가의 일원으로서는 드물게 평양 정권의 통제 밖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다만, 이번 사건을 보는 초점을 제대로 맞추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의 성격적 결함과 평양의 호전성만을 강조한다면 남북한 관계를 풀어나가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논리는 뻔하다. 피붙이까지도 언제든 처단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지도자만 제거하면, 그리고 그 지도자가 장악한 정권을 포위하고 고립시키기만 하면 된다. 정권과 체제의 모순이 극에 달해 북한 스스로가 무너지거나, 정 위험하면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응징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한 번 뒤집어 생각해 보자. 현재의 북한 정치체제에서 김정은과 김정남의 운명이 바뀌었었다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김정남 ‘수령’은 김정은을 포용했을까? 아닐 것이다. 북한이 취하고 있는 ‘수령제 독재’는 3대 혈연계승을 거치면서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그 사회적 분위기에 중독되어 버린 주민들의 의식을 단기간에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일정한 변화를 전제로 협상을 준비하더라도 딜레마는 계속된다. 이번 사건은 대외적인 고립에서 비롯된 피해망상, 김정은의 권력욕, 그리고 그에 기생하는 북한 기득권 세력 등 복합적인 요인을 반영하고 있다.

독재는 항상 국경 너머의 ‘적’을 필요로 한다. 한ㆍ미와의 협상을 통해 내세울 만한 ‘적’이 없어진 세상, 그들은 어떻게 정권의 안전을 도모할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북한 체제의 자멸에 대한 희망적 사고나 안보일변도의 결기 세우기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 공통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나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이 사건은 다른 국가의 시각에서는 그 비정상성에 경멸과 조소를 보내기에 충분한 일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를 마음 편하게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통일의 과제까지를 내다볼 때, 이것은 한국인 전체의 이미지와 연관될 수 있다. 북한은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할 우리 자신의 또 하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이 사건을 조명하되,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거나 입증되지 않은 의미부여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게 김한솔이 언제 나타나는가,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단교를 할 것인가 아닌가보다 더 중요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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