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쇄신안 무기한 보류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법정 공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삼성그룹이 조직 추스르기에 나섰다. 총수 부재사태를 맞은 삼성그룹은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내부 분위기를 다독이면서 전열을 고르고 있다.삼성은 오너십이란 구심점이 사라진만큼 당분간 미래전략실을 존속시키면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할 것으로 관측된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구속된 이 부회장이 18일부터 이틀동안 특검에 소환되면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도 비상근무를 이어갔다. 미래전략실 임원들은 일요일인 지난 19일에도 전원 출근해 특검 수사와 그룹 현안 등을 챙겼다.
미래전략실은 지난해 11월 이 부회장이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소환된 이후 3개월동안 주말과 휴일을 반납한 채 비상근무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2인자인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삼성전자 홍보업무를 총괄하는 이인용 사장도 지난주말 서울구치소에서 이 부회장을 면회하면서 대응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조만간 비상경영체제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그룹 운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은 총수 오너십, 미래전략실,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 등 3개 축으로 이뤄져있다. 그룹 내 계열사 사장단들이 개별 사업을 챙기고 그룹을 총괄하는 핵심사안이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결정은 오너를 거치는 방식이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오너십이란 중심축이 무너진 상황이다.
재계는 삼성이 미래전략실과 사장단협의체란 두 축으로 그룹을 한시적으로 운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삼성그룹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 이건희 회장이 퇴진한 이후 사장단협의체를 가동해 리더십 공백을 메운 바 있다. 당시 전략기획실(현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던 삼성은 수요사장단 회의를 사장단협의체로 전환했다. 그룹의 두 축인 삼성생명의 당시 이수빈 회장, 삼성전자의 당시 이윤우 부회장이 사장단협의체를 이끌었다.
미래전략실은 당분간 존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수가 구속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을 폐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래전략실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오너 역할까지 일부 수행해야할 입장이다. 총수가 없는 상태에서 미전실마저 없어지면 그룹의 굵직한 현안을 챙기거나 계열사 간 업무, 이견 조정 기능 등이 사라지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총수 부재 사태 와중에 당분간 현재 경영 구조에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총수 대행으로는 최지성 부회장이 거론된다. 하지만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어서 운신의 폭이 좁은 편이다. 미래전략실 차장인 장충기 사장까지 입건돼 특검 수사 상황에 따라서는 그룹 수뇌부의 집단공백까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르면 다음달 삼성이 내놓을 것으로 예측됐던 쇄신안도 무기한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일단락될 때 대대적인 쇄신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작년 12월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때 미래전략실 해체, 차명계좌 이익금 환원 등을 약속한 것이 토대다.
하지만 이는 이부회장이 건재하다는 것을 전제로 마련된 쇄신안이다. 미래전략실의 해체가 불투명해진데 이어 차명계좌 이익금을 환원하는 문제도 후순위로 밀렸다. 삼성은 2008년 이 회장의 차명계좌 실명 전환 후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이익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이익금에 이재용 부회장이 추가로 사재를 출연해 사회에 환원할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이마저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삼성 관계자는 “당장은 총수 혐의와 관련된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며 “다른 현안들은 일단 보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그룹 60개 계열사 사장단은 지난 18일 사내망에 ‘삼성그룹 사장단’ 명의로 글을 올려 “그룹이 맞이한 초유의 이번 사태로 인해 충격과 상심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회사를 믿고 각자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권도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