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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41. ‘역사 박물관’ 같은 프라하성…중세를 걷는 기분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는 프라하의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떠 있다. 낯선 거리와 무표정한 사람들, 어제까지 여행하던 스페인과는 달리 오월인데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동유럽에 와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유로가 통용되지 않으니 체코 화폐인 코루나(Koruna)로 환전도 하고 아침도 먹어야겠기에 호스텔에서 가까운 바츨라프 광장(Vaclav Namesti) 근처를 거닐어 무작정 거닐어 본다. 신시가지의 바쁜 사람들 모습이 아직은 정이 가지 않는다. 



호스텔이 싸고 쾌적하기는 한데 아침이 제공이 안 되어 동유럽의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먹는다. 이번 여행에서 전 세계 어디에 가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던 맥도날드 화장실은 10 크로나를 내고 이용해야 한다. 동유럽에서는 화장실 갈 때 돈을 별도로 지불한다고는 들었지만 이곳이 유럽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신시가지의 트램정류장을 찾아가 22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으로 간다. 프라하 성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트램을 타고 올라 프라하성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내려올 계획이다. 트램안에는 사람이 많지도 않지만 승하차하는 현지인들 사이에 나처럼 거의 종점까지 가는 동양인 여행자 둘이 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배낭여행을 떠나온 한국인 모녀다. 대학원을 졸업한 스물여섯의 딸이 엄마를 모시고 한 달 유럽여행을 계획해서 왔다고 한다. 비용이야 부모님이 대셨다지만 친구가 아닌 어머니와 동행하는 자유여행이라니 세상의 어떤 여행보다 뜻 깊어 보인다. 



친절한 모녀의 제안으로 함께 프라하 성을 둘러보기로 한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빨간 지붕과 흰 구름만 보고도 환호성이 나온다. 막 여행을 시작한 그들과 긴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른 내가 함께 프라하성으로 간다.

로레타(Loreta)성당의 탑 안에 27개의 종이 달린 “로레타의 종”이 매시 정각마다 울린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가는 시각이 정시가 아니라 종을 울리지 않았지만 이 성당을 지나가며 프라하성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된다. 이제 중세의 성으로 간다.

로레타 성당에서 내려오니 흐라트차니 광장(Hradcanske nam)이다. 이곳은 블타바(Vltava)강 서쪽 언덕이다.

​프라하 여행의 기점이라는 프라하 성의 방문객들이 바글거린다. 칼과 몽둥이를 든 거인의 동상아래 근위병은 현재 대통령궁인 이곳을 지키고 있다. 미동도 않는 근위병 옆에서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황금색 화려한 장식에는 T, M, J라는 알파벳이 있다. 이 문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아들 요제프의 이니셜이라고 한다. 체코를 지배했던 오스트리아 식민지 시대의 상징을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제 2광장이다. 9세기부터 건축되어 14세기에 완공되어 18세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동유럽에서는 최대의 규모인 프라하성안의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은 체코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프라하성은 언덕위에 있어서 조망도 아름답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티켓을 구입해서 내부로 들어가 본다. 성안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유지만 건물에 입장하려면 티켓이 있어야한다. 짧은 코스를 구입해서 중요한 곳만 입장하기로 한다. 티켓을 소지해도 화장실은 10코루나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제3광장에 들어서니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양식의 성당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성비투스대성당(St. Vitus Cathedral)이다. 10세기부터 지어진 교회는 로마네스크나 고딕양식으로의 재건축을 거쳐 1929년에서야 완성됐다고 한다. 성비투스성당의 역사와 건물의 위용만으로도 프라하라는 도시의 깊이를 알 것 같다.



중세 때부터 그 솜씨가 널리 알려진 것이 보헤미아 글라스라고 하는데 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스테인드글라스와 내부 장식, 조각상들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관람객도 한 둘이 아니어서 약간은 떠밀리는 기분으로 돌아봐야 할 정도다.

21개나 된다는 예배당을 다 둘러 볼 수는 없다. 들어가서 보고 나오기도 하지만 성바츨라프예배당 같은 경우는 벽화나 내부를 창문 밖에서만 감상하기도 한다. 여기 있는 관람객들이 이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차분히 앉아있다고 상상을 해본다. 저 높은 천정의 아름다운 조명과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발한다. 아르누보(Art Nouveau)의 대가인 알폰소 무하의 작품이라는 스테인드글라스는 현대적인 그림이 특이하기도 하지만 이미 그 앞에 서있는 사람들 때문에 금방 찾게 된다. 시대의 영광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대성당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거룩한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 손을 모은 사람들이 앉아있었을 이 공간은 지금은 낯선 발걸음과 여러 가지 언어의 웅성거림으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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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톤 이상의 은을 녹여 만든 얀 네포무크 성인의 화려한 묘다. 성화가 그려진 벽이나 공중에 떠있는 천사의 조각상들이 성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듯하다. 중세의 화려한 교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그 시절 화려했던 종교의 역할을 가늠하게 한다.

​대성당 앞쪽에는 구왕궁이 있다. 중세와 근대에 중요인물들이 왕궁의 창밖으로 내던져져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운 좋게 살아나 역사를 움직인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체코의 기이한 역사인 “투척사건”들이다.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이라고 하니 프라하성의 건물들에는 체코의 역사가 그야말로 알알이 새겨져 있다.



빨간 색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성 이르지 성당(Bazilika sv.Jiri)은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보기와 달리 이곳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빛바랜 벽화들이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은 미술관과 콘서트홀로 사용된다는 성당 안에도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이 성 안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프라하성의 역사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성안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중세를 그대로 간직한 구시가의 빨간 지붕과 녹음,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그 어느 도시의 전경보다 아름답다. 프라하를 여행한 사람들이 왜 그리 극찬했는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 설명할 수 없이 아름다운 도시다.

​이르지 광장(Jirske Nam)에서는 황금소로(Zlata Ulicka)가 이어진다. 연금술사들이 묘약을 만들던 골목이라는 황금소로는 말 그대로 작은 골목길이다. 반지의 제왕의 호빗족에게 알맞은 크기인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중세의 골목이 보존된 곳이다.

키 큰 사람은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낮은 문이 있는 작고 예쁜 집들이 걷는 맛을 더해준다. 작은 집들의 어느 곳은 갑옷과 방패의 전시장이고 어느 곳은 예전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이렇게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 하며 들어가 보면 거기에 사람이 살만한 모든 것들이 아기자기하게 갖추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부인의 재단이 운영하는 가게도 있다. 손재주 뛰어난 체코사람들이 직접 만든 크리스탈이나 인형극용 목각인형인 마리오네뜨 인형을 파는 곳도 있다. 이 작은 골목에 영화포스터와 영사기까지 있다.



황금소로 22번지, 프란츠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하던 그의 여동생 집이 보존돼 있어 시선을 끈다. 6개월간 이곳에 머물려 집필을 했다는 카프카 덕분에 황금소로가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카프카의 작품이 독일어로 출간되었기에 그를 독일 사람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카프카는 체코인이었다. 카프카는 ​독일어로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체코인에게는 과소평가되기도 한다고 한다.

프라하성은 그대로가 역사다. 시대에 따라 양식이 다른 건축물이 통째로 역사의 박물관인 양 보존되어 있다. 성을 한바퀴 돌아 다시 흐라트차니광장의 정문으로 나간다. 성 옆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그대로 중세의 골목 같다.

비탈진 언덕의 골목에 아담하고 예쁜 식당들이 의자를 내놓고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함께 프라하성을 돌아본 모녀와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한다. 청명한 하늘 아래 프라하성 옆 골목 예쁜 노천까페에서 마시는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커피향이 부드럽다. 



독일인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신다는 맥주의 나라 체코라서 필스너 같은 대표적인 맥주는 어디에 가도 마실 수 있다. 중세거리의 풍경과 맥주 간판도 잘 어울린다. 프라하가 아름다운 것은 이런 어울림이 있어서다. 기념품 가게, 식당마저도 풍경과 잘 어울린다.

돌바닥인 구시가를 지나는 트램과 자동차가 마주친다. 서두를 이유 없이 천천히 갈 길을 가는 풍경이 예쁘기만 하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프라하성에서 계속 내려오기만 했는데 발길은 블타바(Vltava)강을 건너는 카를교(Karluv Most) 아래의 캄파(Kampa)섬으로 와 있다.

카를다리를 걸어 구시가로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다리 아래의 캄파섬에 들어와 존레넌 벽에 오게 되었다. 이곳은 수도원이 담 일뿐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어디에 다다라도 모두 아름답고 새롭다. 존레넌과 그의 부인 오노요코의 얼굴이 그려진 벽에는 낙서가 한 가득이다. 이 벽이 유명해진 것은 과거 자유가 억압되던 공산주의 시절, 존레넌의 사망을 계기로 이 벽에 그의 초상화를 비롯한 낙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낙서란 그대로 보존되는 게 아니어서 여행 전에 보고 온 사진과는 다른 낙서들이 즐비하다. 소위 “프라하의 봄”을 겪은 프라하 사람들에게 자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 이상일 것이다. 



아름다운 중세의 거리 뒤편, 자유의 열망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자유에의 의지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존레넌과 오노요코의 얼굴만 보아도 “이매진(Imagine)”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이 배경음악이 되어 떠다니는 것 같다.

다리 아래 공간에서는 트럼펫, 실로폰과 북이 연주되는 공연이 한창이다. 서로 눈을 마주보고 리듬을 맞추어 흥겹게 연주하는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이 광경들이 통제되던 공산주의 시절에는 이 아름다운 도시의 봄을 체코인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계단을 따라 오르면 카를다리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어쩌다 캄파공원으로 오게 되었지만 해 기울고 있는 캄파의 분위기가 좋다. 계단을 따라 카를다리로 올라가 본다.

길어진 그림자들이 카를다리를 메우는 가운데 이 위에서도 역시 버스킹이 한창이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연주는 연륜이 느껴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어수선한 길을 더듬어 다리를 벗어난다.



​​카를다리를 벗어난 구시가에는 사람 천지다. 설밑 재래시장처럼 사람 와글거리는 이곳에서 프라하성에서 함께한 모녀와 헤어진다. 프라하 일정이 오늘로 마지막인 그들은 이제 숙소로 돌아가 쉬다가 짐을 싼다고 한다. 외로운 여행자와 흔쾌히 동행이 되어주고 혼자 다니면 사진도 못찍었을 거라며 신경 써서 사진 찍어주던 상냥한 모녀와의 한나절은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통성명도 안하고 한나절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따뜻하고 정갈한 사람들로 뇌리에 남는다.

사람이 제일 많이 들락거리는 구시가의 광장에는 건물도 많다. 아직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저 사람들에 휩쓸려 걷기만 해도 재미있다. 비행기처럼 커다란 타임머신이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중세의 프라하로 불시착한 것 같은 풍경이다. 중세의 아름다운 건물, 멋진 거리, 눈을 뗄 수 없는 상점들의 아기자기한 물건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풍경 한가운데에 선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일본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거리에서 길을 묻고 있다.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다가 이십분쯤 지났는데 그 두 사람은 아직도 길을 못 찾고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고 있다. 해지는 거리의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딱히 할일도 없던 나에게 오지랖이 발동한다. “Can I help you?”라고 묻는데 돌아온 대답은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다. 이 두 사람은 부부도 아니었을 뿐더러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들이다. 방금 프라하에 도착해서 가이드북을 보고 미리 정한 숙소를 찾는 중이어서 그나마 하루 먼저 도착한 내가 가이드를 해 드릴 수 있다. 찾는 곳의 주소도 이 광장에서 가까운 곳이라 아예 그곳까지 안내하고 방 잡는 것까지 도와드리니 너무 고마워하신다. 덕분에 프라하의 첫 저녁은 광장의 비싼 노천식당에서 프라하식 족발 요리인 꼴레뇨와 소고기 스프 굴라쉬를 맛볼 수 있다. 길을 알려 주어서 고맙다고 두 분이 저녁을 사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베푼 작은 친절이 눈덩이처럼 불어 나에게 돌아온다.



유럽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로 이곳에 도착했다는 분들과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니 이미 해가 넘어 가버렸다. 온종일 흰구름이 피어나던 하늘이 짙은 파랑으로 물든다.

두 사람과 다시 카를다리 중간까지 걸어가 멀리 프라하성의 불빛과 야경을 바라본다. 블타바강은 유유히 흐르고 조명은 낮에 다녀온 프라하성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12월에 시작된 여행이 5월을 맞이한다. 여행을 마칠 날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오늘밤 프라하의 밤거리는 아름다우면서 낯설고, 설레면서도 긴 여행이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감 같은 것으로 채워지는 중이다. 차가우면서도 상쾌한 밤공기를 맡는다. 먼 길을 돌아 프라하에 왔다. 오래전 유럽여행에서 프라하에 못 들른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것이 이번 여행에 일부러 프라하 일정을 계획한 이유다.

우연히 만나 저녁 시간을 함께한 분들과도 헤어져 구시가에서 많이 멀지 않은 호스텔로 돌아간다. 오늘은 어떤 행운인지 친절한 한국인들을 만나게 된 날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낮에 보았던 멋진 매장들은 이미 불이 꺼졌다. 옅은 가로등에 의지해 약간 골목에 위치한 숙소에 잰걸음으로 들어간다. 도미토리의 쾌적한 침대 하나가 지친 여행자를 기다린다. 프라하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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