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나 이 세상에 깨닫기 위해 오지 않았다/취하기 위해 왔다”고 노래한 시인 고은에게 술은 뮤즈나 다름없다. 70년대를 기록한 시인의 ‘바람의 기록’의 매일 일기는 “대취했다”로 끝난다. 작가들의 술 사랑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영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올리비아 랭은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들의 삶을 살피면서 술중독이란 공통점을 찾아냈다.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테네시 윌리엄스, 존 배리먼, 존 치버, 레이먼드 카버까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들에게 술은 어떤 의미였고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랭은 미국을 횡단하며 이들의 발자취를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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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작가와 술/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현암사] |
‘작가와 술’(현암사)는 1973년 혹독하게 추운 겨울날 아침,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주류 매장으로 들어가는 존 치버와 레이먼드 카버의 황당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몇 시간 후면 아이오와 주립대 강단에 서야 할 교수들이지만 상태는 엉망이다. 이 즈음, 서로를 알게 된 둘은 만나면 술에 절었다. 카버는 후에 한 문예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와 나는 만나면 술만 마셔댔다. 둘이 함께 있을 때는 둘 중 누구도 타자기 덮개를 벗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저자의 첫 여정은 1983년 테네시 윌리엄스가 숨을 거둔 뉴욕의 한 호텔. 윌리엄스는 극장가 외곽에 자리잡은 작은 호텔 엘리제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채 숨을 거둔다. 사인은 안약병의 플라스틱 뚜겅이 목에 걸린 질식사. 저자는 윌리엄스의 성장기를 더듬어가며 그의 불안과 우울의 정체를 따라간다. 이어 뉴올리언스, 키웨스트를 거쳐 존 배리먼이 불운한 회복기를 보낸 세인트폴을 거쳐 레이먼드 카버가 말년을 보낸 포트 앤젤레스에서 여정은 끝난다.
이들에게서 찾아낸 공통점은 흥미롭다. 존 치버와 테네시 윌리엄스는 광적인 수영애호가였고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는 바다에 열광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경우엔 포트 앤젤레스 위쪽 산악지대에서 흘러내려오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중독적으로 찬양했다. 물에 대한 사랑과 함께 방랑적 기질도 알코올중독 작가들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작가들의 삶과 문학, 알코올에 대한 과학적 탐색, 저자의 기억의 소환 등이 어우러진 풍성한 글쓰기는 명백하면서 불가사의한, 인간을 흥분시키며 파멸로 이끄는 대상에 대한 냉정한 탐색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작가들의 술 찬양과 변명에 비판적이다. 랭 스스로 알코올중독 가정에서 자란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에 이들의 삶과 문학을 통해 술의 작용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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