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預保)와 예보(豫報)

한자 문화권을 살아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종종 겪는 일중의 하나가 동음이의어로 인해 발생하는 해프닝이다. 사과(謝過, 잘못을 빎)와 사과(沙果, 과일), 식수(食水, 물)와 식수(植樹, 나무를 심음), 과거(科擧, 시험)와 과거(過去, 지난 때)처럼 독음은 같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말들이 일상의 오해를 만들어 내곤 한다.

어렸을 적 기억을 되짚어 보면, 교실에서 선생님이 무심코 김아무개를 호명했는데 두 명이 동시에 일어나서는 서로를 보며 겸연쩍어하는 상황을 목도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두 명의 김아무개는 분명 얼굴 생김새와 행동거지가 다르고 특히 한자로 볼 때는 이름역시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두 사람의 분명한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실수를 하는 것이다.

예보(預保)와 예보(豫報), 전자는 ‘예금을 보호한다’는 뜻으로 국민의 예금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에 든든한 믿음을 주고 있는 예금보험공사를 줄여서 부르는 약칭이다. 그리고 후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린다’는 뜻으로 통상 날씨정보를 제공하여 국민들이 편안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는 일기예보를 지칭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예보라는 기관이름을 들었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아닌 일기예보를 떠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보(預保)를 예보(豫報)와 혼동하는 것이다.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보호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임에도 일반 국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잔상효과로 인해 일부 오해를 하고 있으니 예금보험공사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역으로 발상을 전환해서 나와 다른 것이 아닌 나와 같은 것을 찾아보라는 말이 있다. 곰곰이 살펴보면 예보(預保)와 예보(豫報)가 꼭 그렇게 다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름 속에 엄연히 같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맞상대하고 있다. 예보(預保)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잠재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여 금융시장에 불안이나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보(豫報)도 예상치 못한 날씨변화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다가올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여 알려줌으로써 위험에 대비토록 한다.

둘째, 정보가 생명이다. 위험요인을 정확히 판별해 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이를 정밀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예보(預保)는 국내외 경제 및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와 직·간접적으로 수집한 금융기관 정보를 종합분석하여 금융시장에 발생가능한 위험을 확인한다. 예보(豫報)는 지상ㆍ위성ㆍ해양ㆍ항공ㆍ레이더 등 가능한 관측장비을 총망라하여 수집한 정보를 4대의 슈퍼컴퓨터를 통해 분석하여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셋째,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위험이라는 것이 과거와 동일한 위험이 반복되기도 하지만 전례가 없는 새로운 위험도 발생한다. 이에 따라 아무리 분석을 철저히 해도 때때로 예상치 못한 위험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발생가능성은 작지만 한번 발생하면 모든 것을 뒤흔들어버리는 금융위기와 기상이변이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단 위험이 발생하면 미리 예측해내지 못한 책임에 시달리는 거센 후폭풍을 맞이하게 된다.

미래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가장 확률이 높은 가능성을 집어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불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현재 예보(預保)가 금융시장의 위험을 예보(豫報)하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 금융권의 적시성있는 정보일 것이다. 정보는 레고블록과 같아서 개별적인 의미도 중요하지만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서로 잘 합쳐지면 새로운 차원의 고급정보로 재탄생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이 각자 보유한 금융정보를 한데 모아 ‘금융정보 공유협의체(가칭)’와 같은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금융시장의 위험요인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미래의 위험을 상대하는 데는 각자도생(各自圖生)보다는 동심협력(同心協力)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