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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러운 빠른 년생②] 꼬이는 회사족보에…“16년 친구한테 존댓말 하라니…”
-빠른 년생 “양쪽 모두에서 질타에 곤란”
-2009년에 제도 폐지됐지만, 논란은 계속
-전문가 “위계질서 강한 문화부터 고쳐야”

[헤럴드경제=강문규 기자ㆍ유오상 기자] “A 씨는 89년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어떻게 B씨랑 반말해?” 건설업체 구매팀에서 일하는 2년차 직장인 A(28) 씨는 회식 자리에서 팀장의 질문을 듣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A 씨는 같이 입사한 B(29) 씨와는 대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사이지만, 회사에서는 존댓말을 쓰라는 팀장의 지시를 어겨 여러 차례 혼난 적이 있다. A 씨가 흔히 말하는 ‘빠른 년생’이기 때문이었다. 나이와 기수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회사 분위기에 팀장의 지적까지 이어지며 A 씨는 졸지에 회식자리를 망쳐버린 죄인이 돼 있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빠른’ 사회초년생들은 두 개의 자아 중 하나를 강요받는다. 이들은 학교생활 16년 동안 같이 지냈던 한 살 위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자신의 원래 생일을 따라가야 한다. [사진=123rf]

30여분 동안 B 씨에게 형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팀장의 잔소리를 들은 A 씨는 팀장이 빠진 2차 자리에서까지 ‘족보 브레이커’로 불리며 팀원들의 뒷담화 소재가 됐다. 그는 “한 살 차이가 중요한 한국 문화권에서 16년 지기 친구와도 싸우게 생겼다”며 “내가 원해서 학교에 일찍 간 게 아닌데 ‘족보 브레이커’라고 욕까지 먹고 있어 괴롭다”고 말했다.

이처럼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빠른’ 사회초년생들은 두 개의 자아 중 하나를 강요받는다. 또래 생활을 유지하던 학교생활이 끝나면 학교생활 16년 동안 같이 지냈던 한 살 위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자신의 원래 생일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회사 생활에 학교, 인맥 등이 꼬이면서 발생한다.

지난해 금융사 취업에 성공한 유태연(29) 씨도 초등학교 입학 연도에 따른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달라 회사 내 호칭 문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 씨는 “입사 초기에는 실제 나이를 말했는데, 회사 내 동문 모임을 가보니 혼란이 왔다”며 “동문 모임에서는 반말을 강요당하고, 업무 때는 존댓말을 강요당하는데, 결국 돌아오는 말은 ‘족보 꼬이게 한 놈’ 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빠른 년생’들은 입을 모아 강압적인 회사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나이와 서열을 중시하는 회사 내 문화 안에서 때늦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1월이 생일인 직장인 서모(35) 씨는 “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나서 듣는 말인 ‘어려보이고 싶었냐?’와 ‘연장자 대접받고 싶냐’였다”며 “나이와 서열이 인간관계 전부처럼 여겨지다 보니 처음에는 업무 협조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지적도 비슷하다. 이명서 한국사회심리사회연구원 연구사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연 나이’ 문화에 서열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겹쳐 사회 초년생들에게 혼란을 주는 상황”이라며 “같은 문제가 반복돼 지난 2009년부터는 ‘빠른 년생’ 제도가 사라졌지만, 강압적인 위계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슷한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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