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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트럼프 시대 ‘팩트(사실)’는 무엇인가

"진실부 장관은 거짓을 걱정한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한 구절이다. 그의 대표작 ‘동물 농장’이 사회주의를 풍자했다면, 1984는 전체주의를 고발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출간된 지 67년이 지난 이 책이 온라인서점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요즘 미국에서 1984가 반향을 일으킨 것은 트럼프 정부의 거짓말 논란이 한몫했다.

논란의 불씨는 트럼프 정부의 ‘입’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당겼다. 그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첫 공식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인파가 사상 최대였다고 밝힌 것이다. 미 언론은 취임식 당일 위성사진까지 증거로 들며 그의 말은 거짓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언론과 트럼프 정부간 진실공방 속에 급기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 고문이 “스파이서가 대안적 사실을 준 것”이라고 감싸면서 콘웨이를 향해 거짓과 대안적 사실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파장이 커지자 ‘사실’에 대한 인터넷 검색이 폭주했고,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트위터 계정에 그 뜻을 올리기도 했다.

CNN방송은 콘웨이의 발언은 1984의 ‘진실부 장관’을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1984에서 여론을 통제ㆍ감시하는 ‘빅 브라더’처럼 트럼프 정부는 최근 정부기관들의 대 국민 소통과 언론 접촉을 금지한 사실이 들통났다. 트럼프 정부를 둘러싼 거짓말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취임 직전 트럼프의 성추문 등 약점이 담긴 ‘트럼프 X파일’의 진위를 놓고 CNN과 트럼프는 한바탕 전쟁을 벌인 바 있다. 또 선거 유세기간 TV토론에서 트럼프가 했던 말을 두고 미 언론들은 허위 사실을 가려내려고 열을 올렸었다.

트럼프의 지지자 스코티 넬 휴즈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불행히 사실이란 것은 더 이상 없다”면서 “트럼프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그 자신이 경험한 내용에 감정을 섞어 함축적으로 말한 것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미국에선 참과 거짓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에 국한된 얘기일까. 나라별로 정도 차는 있겠지만, ‘포스트-트루스(post-truth)’시대를 맞아 말과 정보가 불신을 받는 것은 세계 공통의 고민이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포스트-트루스, 즉 ‘탈(脫) 진실’은 “객관적인 사실보다 신념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을 뜻한다.

오바마 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존 케리는 이달 퇴임하기 전 트럼프의 트위터 정치를 겨냥해 “지금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팩트(사실)없는 정치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점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경제 불안과 압박이 있고, 그런 두려움을 분파주의나 인종 문제와 연결지어 악용하고 정치 표어로 내세울 때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우리의 오랜 역사가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최순실 사태와 대선 정국을 지켜보면서 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건 이 땅에 발붙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다. bett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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