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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추상화의 거장‘윤명로’…화업인생 60년의 향기가…
-인사아트센터 ‘윤명로, 그때와 지금’展
초기作부터 신작까지 60여점 총망라
50년대부터 10년마다 달라진 작품 감상
“향기처럼 보이지 않는걸 담고 싶어”

“어떤 사람들은 누드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세계지도라고 하지요.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같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이렇게 다르니까요. 이게 추상화입니다. 제목에 집착하기보다, 작품을 보고 여지를 둘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팔순이 넘은 노익장이나,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가나문화재단은 한국 추상회회의 거장 윤명로(81) 화백의 60여년 화업인생을 되돌아보는 ‘윤명로, 그때와 지금’전을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전시에는 1956년 윤 화백이 대학때 그렸던 유화 작품부터 신작까지 60여 점의 작품이 총망라됐다.

1층은 2010년 이후 제작된 최근작, 2층은 2000년대 ’겸재 예찬‘, 3층은 1990년대 ‘익명의 땅’, 4층은 1980년대 ‘얼레짓’, 마지막 5층은 1950~60년 앵포르멜(비정형 회화)시기부터 70년대 ‘균열’시리즈로 구성됐다. 1층에서 5층까지 전시장을 이동하는 동안 10년 주기로 변하는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가장 오래된 작품은 대학 1학년때 그렸던 유화(무제, 1956년작)다. 사람과 나무, 집이 그려진 이 작품은 윤 화백이 유일하게 ‘사람’을 그린 작품이다.

이후 그는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로 돌아서며, 재료에 대한 실험을 이어간다. 음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작품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준다.

최근 단색화 열풍의 연장선상에서 재조명 받고 있는 ‘균열’시리즈도 전시에 나왔다. 캔버스 위를 덮은 물감의 우연한 갈라짐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작가가 물감의 두께와 색채를 조절해 질감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1976년 첫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으나, 당시에는 시장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윤 화백은 “그림에 균열이 있다고, 회사가 갈라지면 어떡하느냐며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전시 기획한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4ㆍ19 학생혁명의 성공으로 자유주의가 탄력을 받는가 싶더니 5ㆍ16군사혁명이 파생시킨 엄혹한 사회 상황을 바라보는 화가의 착잡한 심정이 무언가 자꾸 갈라져 나가는 분열 증세였는데, 그 심중의 표출이 ‘균열’시리즈’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윤 화백은 ‘얼레짓’에 몰입한다. 연 실을 감는 도구인 ‘얼레’에 ‘짓’을 더한 이 말은 연을 날릴 때 이리저리 흔들리는 움직임처럼 자유롭고 무작위한 선들이 화폭을 채운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죽(風竹)’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내가 마음이 가장 편하고 안정됐을 때 그린 시리즈”라는 윤화백의 말처럼 자유롭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후 1990년대 거대한 자연의 응축된 에너지를 담아낸 ‘익명의 땅’, 2000년대 조선 후기 진경산수를 창안한 겸재 정선에 영감을 받은 ‘겸재예찬’이 이어진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붓을 버리고 ‘싸리비’를 들었다. 마당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다가, 그 모양이 너무 아름다워 작업에도 적용한 것이다. 싸리비 그림에는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선들이 살아움직인다. “아무리 맑은 물도 10년이면 썪는다”는 윤 화백은 “작가라면 끊임없는 실험과 새로움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원로 현역의 내공은 녹슬지 않았다. 향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화폭에 담고싶다 했지만, 정작 그 그림앞에 서면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전시는 3월 5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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