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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愛벌레 인생 이강운 교수] “소 두마리를 3만㎡ 방목… 쇠똥구리 연구 미쳤다고 했지만”
국내 곤충학은 해충연구 중심
밑바닥부터 관찰하며 배워…
애벌레의 모든 것 책으로 담아


“소 두 마리를 키우려고 9000평(약 3만㎡)짜리 방목장을 만들었다. 오로지 쇠똥구리 연구를 위해서다. 쇠똥구리는 인공 축사에서는 살 수 없다. 연구를 위해서라지만, 축사를 처음 만들 때 주위에서는 미쳤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애벌레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고, 결국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강원도 횡성에서도 차를 타고 산골을 향해 20분. 인적이 뜸한 마을 속에서 이강운(59) 교수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발견했다. 3만평 가까운 연구소에는 박물관과 연구동, 애벌레 축사, 이 교수의 집까지 있다. 그러나 부지 내 가장 넓은 구역은 연구소 부지의 1/3을 차지한 소 방목장이었다. 이강운 교수가 1997년 사비를 털어 이곳 횡성에 터를 잡았으니 오로지 애벌레와 함께 산지 딱 20년이다. 

자신의 20년 노력이 담긴 곤충들을 둘러보는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교수. 박해묵 기자/mook@

“애벌레는 까다로운 녀석”이라는 이 교수의 연구는 최근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 12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애벌레 153종을 정리한 도감인 ‘캐터필러Ⅰ’을 펴낸 것이다. 연구 규모도 매년 커져 지금은 연간 900여종의 애벌레를 키우고 있다. 이 교수의 제자들도 연구원으로 합세해 연구소에는 현재 10명의 연구원이 상주하며 애벌레 연구를 함께하고 있다.

연구동 한쪽에는 이 교수와 연구원들이 발견한 신종과 미기록종 표본이 전시돼 있다. 그 옆에는 신종과 미기록종에 대해 연구한 그의 학술논문이 함께 걸려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애벌레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가 유일하다.

-축사 크기를 보면 언뜻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애벌레 연구가 까다롭다. 애벌레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먹던 식물만 먹고, 자기한테 맞는 환경에서만 살 수 있다. 심지어 쇠똥구리는 소가 풀이 아닌 사료를 먹는 환경에서는 죽어버린다. 쇠똥구리가 자연 상태에서 어떻게 발육하고 성장하는지 관찰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이렇게 보면 애벌레 연구 자체가 어려운 분야인 것 같다.

▶20년 전만 해도 국내에 애벌레 연구는 전혀 없다시피 했다. 곤충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60여 년 전에 해충 연구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애벌레 연구라고 해봐야 해충으로 분류된 일부 종에 한정됐다. 국내 연구 서적이 없다보니 바닥에서부터 직접 관찰하며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20년 동안 연구를 진행하려면 어떤 소명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소명감을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었다. 인간은 전 세계 60억명이 살지만 한 종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구 상 생물을 종으로 따지면 70%는 곤충이다. 그럼에도, 곤충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고, 연구를 하며 지금은 나름의 소명감도 생겼다.

-연구 20년 만에 첫 책이 나왔다.

▶애벌레 알부터 죽기 직전까지 모습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애벌레의 한순간을 담은 책은 있었지만, 생에를 모두 다룬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모든 애벌레 소개에는 먹이식물을 함께 명시했다. 애벌레 농장을 키우려고 해도 어떤 애벌레가 어떤 식물을 먹는지 알아야 키울 수 있다. 그런 실무적인 부분까지 모두 고려했다.

-책에 나온 연구용어가 모두 순 우리말이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20년 전 처음 연구할 때는 학계에서 모두 일본식 한자 용어를 사용했다. 곤충학에서 흔히 쓰이는 ‘기작(機作)’이란 단어는 심지어 국어사전에조차 뜻이 나와 있지 않다. ‘유충(幼蟲)’이란 단어도 아이 벌레란 뜻 그대로 ‘애벌레’라는 표현을 쓰면 이해하기 편하다.

-특별히 용어에 신경 쓴 이유라도 있는가?

▶첫 애벌레 연구인만큼 용어 정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곤충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 공부를 할 때는 모두 일본 용어를 사용했다. 당연히 연구 효율도 떨어지고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때의 기억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은 어떻게 되나?

▶전국을 돌며 미기록종을 찾았고,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보고되지 않은 신종까지 찾았다. 연구소 이름을 따서 ‘홀로세아나’라고 지었다. 지금은 연구원들이 각 연구분야에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연구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곤충의 가능성에 비해 아직 산업과 응용과학과의 접목 연구도 초기단계다 보니 신약 개발 등과 연계할 수 있는 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횡성=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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