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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좋아 아이 좋아…설렌다, 평창·강릉의 멋·맛·쉼
동해가 만든 해안단구 남강릉 ‘바다부채길’
바다·산·미술의 조화 ‘하슬라 아트월드’
50개 자판기 늘어선 ‘안목항 커피거리’ 진풍경
육해공 식품·의류 모인 전통 ‘성남시장’도 매력




눈(雪) 오는 날, 강아지 보다 더 기뻐 날뛰는 건 사람이다.

시인 정호승은 ‘첫눈 내리는 날,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첫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라면서,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속에 나오는 인어 전지현 같은 마음을 고백했다. 페미니스트 시인 문정희는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라고 했다. 맨 정신에 취중 진담 같은 도발적 시를 노래하게 만든 눈(雪)이다.

평창에 국가대표급 눈꽃 바다가 만들어졌다. 강릉 바다가 거대한 제설기(製雪機) 되어 뿌린 눈이다. 동해 해무(海霧)가 평창 백두대간을 넘기 버거워 대관령 동서에 머무르다 알토란 같은 눈을 올림픽 빌리지에 연신 뿌려댄다.



하늘목장 끝에 있는 선자령 꼭대기(해발 1157m)에서 내려다 보면 북쪽의 대공산성, 남동쪽의 새봉과 사태골, 서편의 삼양목장, 양떼목장이 백옥의 S라인을 그린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이 열릴 스키점프대도 흰색 신사로 변신했다. 봄 부터 가을 까지 청바지 차림이었다가 비로소 딱 어울리는 수트로 갈아 입은 것이다.

대관령에는 8일밤 또 눈이 내렸다. 포근한 날이 이어지더니, 열흘만의 눈이다. 아이들은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8부 능선까지 올라가 비닐돗자리로 썰매를 즐겼다.

예로부터 ‘어린애가 눈 온 줄 모르면 풍년이 들 조짐’이라 했다. 설원 위에서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2017년 뭔가 희망적인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긴다.

강릉으로 내려와 대관령을 올려다보면, 산꼭대기에선 위압적 폼을 잡던 풍력발전기가 ‘텔레토비’ 동산처럼 정겹다. 1년 남짓 다가온 올림픽때 평창-정선에선 역동적인 설상경기가, 강릉에선 미기(美技)와 소프트파워를 겨루는 빙상경기가 열린다. 피겨의 아름다움 펼쳐질 강릉은 최근 들어 몇 가지 매력을 더 갖췄다.

남강릉 ‘바다부채길’은 배가 산으로 올라간 정동진 썬크루즈 절벽 아래 해안단구과 청록빛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2.86㎞ 해변데크길이다. 석달전 개방했다. 그 남쪽해안로는 tvN 드라마 ‘시그널’ 마지막장면 촬영이 있었던 헌화로이다. 절세의 수로부인에게 반해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의 꽃을 꺾어준 노인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절벽 아래 해안길이다. 바다부채길에서 헌화로까지 이어진 해안선의 바윗돌들은 지층의 모양새로 보아 일제히 육지를 향해 얼굴을 보이며 45도쯤 기울어진 모습으로 서 있다. 헌화로를 지나다보면 바위들이 ‘날 좀 보래요~’라고 말 거는 듯한 느낌을 주어 자꾸 눈을 마주치게 된다. 2300만년전 지각변동으로 생긴 이 ‘기울어진 지층’은 다양한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바다부채길의 종점인 썬크루즈에서 등명낙가사 쪽으로 5㎞쯤 가다보면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1996년) 지역 인근 경사진 언덕에 미술관이 생겼다. 동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하슬라 아트월드 입구엔 뚱뚱한 아저씨 한테 팔짱 낀 젊은 아가씨 커플 조각상을 만난다. 작가는 이 경치 좋은 곳에서 외도를 꿈꾸며 이 작품을 구상했는데, 완성해놓고 보니 남자는 자신을, 여자는 실제 자기 부인을 닮아 놀랐다고 한다. 자기 부인을 자랑하는 고도의 전략 같기도 하다.

아트월드 안에는 권력(칼)과 재판권(저울)을 모두 지닌 여신 모빌 ‘마더스’, 신사임당 흉상 조각, 바다와 관련된 회화들, 마리오네트, 피오키오 인형들이 전시돼 있고, 밖에는 모계사회를 상징하는 빌런도르프의 비너스, 로드아트, 곤충의 숲, 음악이 함께 하는 하늘전망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최고액 지폐의 모델 사임당의 고향이라서 그런지, 여성에 대한 강한 존경심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다. 자녀 체험공간, 숙박시설 등도 갖췄다.

경포대 남쪽 안목항의 커피거리는 탄생과정이 흥미롭다. 과거 낚싯꾼들을 위한 낚시 재료매장이 즐비했던 이곳에서 태공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던 믹스커피 자판기가 하나 둘 씩 늘어나더니, 연인과 가족들 조차 ‘커피 마시러 안목 가기’가 나들이 코스가 돼 버렸고, 최대 50대의 자판기가 도열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고 한다.

최고수 바리스타들의 시선이 자판기 커피에 꽂힌다. 정확히는 그 문화에 주목한 것이다. 국내 바리스타 1호인 박이추 선생 등 4명의 ‘일타’ 바리스타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세계적인 커피거리로 발돋움한다. 이곳 커피는 ‘집밥’ 격이다. 집집마다 커피를 볶고 저마다의 기법으로 로스팅하기에 이웃과 차별되는 ‘솥 다른 밥’인 것이다. 전국에서 알만한 커피축제가 열린지도 벌써 8년이나 됐다.

시내로 들어서면 남대천과 옛 강릉시청 사이 지점에서, 영동지방 최대, 최고(古) 전통마켓 성남시장의 버라이어티 매력을 느낄수 있다. 동해, 삼척, 속초, 평창, 정선을 연결하는 물류중심지 답게 생물, 건어물, 대관령 청정 한우, 닭강정 등 육해공 식품과 의류, 잡화가 다 모여있다. 요즘 잘 잡히지 않는다는 흐물흐물한 몸매의 곰치도 볼 수 있고, 강릉의 새 명물인 소머리곰탕, 빨간떡뽂이 맛은 그냥 치나칠수 없다.

서울로 가기 위해 다시 설원에 오른다.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대는 미리 보는 동계올림픽의 메카이다. 이 점프대는 스키점프 선수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국가대표’의 촬영무대이기도 하다. 점프대에 서면 올림픽 선수가 된 기분이다.



요즘 평창의 올림픽 시설과 알펜시아, 용평, 하이원, 비발디 등에는 동남아, 중화권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눈 내리지 않는 나라에 한국 겨울스포츠의 매력을 전하는 ‘스키 코리아 페스티벌’ 관광객들이다. 이들이 평창-정선에서 지르는 환호는 한국인 보다 더 커 보인다.

9일부터 평창 알펜시아와 강릉 빙상경기장에서는 전세계 청소년들에게 겨울스포츠 체험기회와 함께 우리 역사 문화 정보를 주는 드림프로그램 열네번째 행사가 시작됐다. 조직위와 지자체가 함께 벌이는 지구촌 나눔행보이다. 오는 21일까지 진행될 열네번째 프로그램에는 40개국 170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한다. 지금까지 분쟁지역, 가난한 열대지방, 장애 청소년 등 수천명이 한국의 도움으로 겨울스포츠를 익혀 국제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평창의 어르신들은 2년전 군청을 찾아가 “우리한테 뭐 좀 시켜달라”고 품앗이 기부를 요청했고 1년간 올림픽 공부를 했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외국인들이 감탄와 웃음을 본 주민들은 이제 우리 국민들의 환호과 성원을 기다리고 있다. ‘매력 올림픽’ 인양, 볼거리ㆍ먹거리가 즐비한 강릉-평창 주민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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