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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39. 사그라다파밀리아ㆍ피카소미술관…바르셀로나 뒷골목 “예술이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어제와 같은 시각 호스텔을 나서서 비슷하게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 : 성가족 성당)에 도착한다. 미처 예약 못하고 왔던 어제 줄서서 기다리느라, 다시 예약하느라 시간만 낭비하던 나랑 비슷한 사람이 오늘도 많다. 그렇게 줄을 서 있다가 9시에 문이 열리면 드디어 입장이다.

​1882년 시공되었다는 봉화대 뒤편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가 처음부터 설계한 것이 아니라 전임자가 지하까지 짓고 나서 건축가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전임자의 설계를 완전히 변경해 무데하르 양식과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지금의 성당을 설계했다. 



시내 어느 전망대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 바로 이곳에 있는 4개의 첨탑이다. 100여년 전부터 공사중이인 사그라다파밀리아는 가림막이나 크레인이 언제나 함께 한다.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는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 아래의 문으로 성당에 입장한다. 이 벽면은 가우디가 죽은 후에 수비라치라는 조각가에 의해 조각된 것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첨탑의 꼭대기부터 오른다. 사람하나 돌아서기도 버거울 정도의 나선형 계단은 끝도 없을 것처럼 감겨 있다. 높디높은 4개의 첨탑마다 “성스럽도다.”이라는 뜻의 “Sanctus”라는 글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 있다. 워낙 관람객이 오래 머물 수는 없어도 첨탑에서 바라보이는 바르셀로나 시내와 다른 첨탑의 조각들, 자연을 그대로 닮은 조각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마주하는 섬세한 손길들이 놀랍기만 하다.



성당 내부는 순백의 숲 같다. 높은 지붕을 받치는 하얀 기둥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기둥이 나무 줄기인 듯 가지가 뻗어나가 천장의 나뭇잎 같은 기하학적 모형들을 떠받치고 있는 느낌이다. 지연이 만든 숲이 아니라 인간이 신에게 봉헌하는 예배당의 숲 속에 와 있는 느낌이다.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이 사그라다파밀리아의 오디오 가이드는 필수라고 했는데, 과연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장소를 옮기는 것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2010년에야 공개되었다는 예배당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낮은 소음이 되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경건해야할 공간이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현재 건축이 진행 중인 이곳에서 나도 그들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와 있다. 창을 통해 하늘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하얀 빛줄기가 신의 인사처럼 느껴진다.



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것은 이곳에서는 기본에 지나지 않는다. 창을 통과한 빛이 하얀 벽면을 물들이고 흰 기둥의 색을 시시각각 변화시킨다. 오디오가이드가 끝나고 나서도 이곳을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 빚어놓은 하얀 돌의 성전을 물들이는 빛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저마다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보지만 얼마나 좋은 사진이 나올까 염려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영리한 인간의 손을 빌렸지만 자연을 닮은 건축물이 신에게 봉헌되고 있다.

제단 아래 매달린 예수 상을 바라본다. 수없이 사람들이 오가고 수많은 말들로 시끄러운 예배당에 혼자 앉는다. 이 대단한 역사를 생각해낸 가우디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독창적인 건축물들로 부와 명성을 쌓던 건축가가 대성당 건축에 참여하게 되고 말년에는 사그라다파밀리아 건축에만 정진하다가 전차에 치여 안타깝게 칠십 세에 죽었다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가우디의 일생이 궁금해진다.

따로 마련된 가우디 박물관에서는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그의 건축물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설명해주기도 하고 어떻게 그 높이를 견디도록 설계했는지 모형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가우디가 지었다는 어린이 학교 모형과 가우디의 사무실이 보관된 별채 건물까지 들어갔다 와서야 사그라다파밀리아 관람이 끝난다. 이곳에서만 네 시간 넘게 있다가 나오게 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만 진행중인 공사는 더뎌지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당 입장료와 오디오가이드까지 25유로의 비용이 든다. 세속적 잣대로 계산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관람할 것이고 다른 기부금들도 있다면 생각보다 큰 돈이 모일 것도 같은데 공사의 규모가 천문학적인 것이리라 감히 추측해 본다.

가우디 사후 100주년 기념인 2026년 완공이 목표라고는 하지만 경제위기 속에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쳇바퀴 같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를 보았을 때 동화 같다는 말로 표현하지만 신을 잊은 현대인들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이 성스러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준공된 성가족성당에서의 미사를 보게 되는 그 날이 오기를….



사그라다파밀리아에서 멀지 않은 산파우병원(Hospital de Sant Pau)으로 걸어간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는 노천식당들이 이어져 사그라다파밀리아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2시가 되어가니 배가 고프다. 어쨌든 산파우병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가우디의 작품은 아니고 동시대에 활동하던 바르셀로나의 대표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의 건축물이다.

까딸루냐에 지어진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라는 이곳은 고딕양식, 이슬람 양식의 화려한 건물이다. 건물마다 성자와 천사상이 조각되어 환자의 치유를 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이다.



산파우 병원 앞에서 나처럼 방금 사그라파밀리아를 보고 나왔다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점심이라도 먹고 싶어진다. 산파우병원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부탁하던 그녀는 볼 게 많고 일정이 바쁘다며 다음 코스인 구엘공원으로 가야한다고 버스정류장을 찾아 뛰다시피 사라져 버린다. 바쁜 시간을 쪼개 유럽여행을 왔으니 자유여행자라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가 씁쓸하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함께 밥 먹을 사람이 그리웠던 나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터덜터덜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무엇이라도 먹어야 사람에게 진 허기도 채워질 것 같다.



까딸라냐 음악당(Palau de la Música Catalana)은 아까 다녀온 산파우 병원을 지은 몬타네르(Montaner)가 건축했다. 20세기 초반에는 가우디만큼 명성이 높았다는 몬타네르의 까딸라냐 음악당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못 보고 이곳만 봐도 아깝지 않을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한다.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다는 내부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어느 날 다시 바르셀로나에 온다면 이곳에서 공연을 꼭 보리라 다짐한다. 가우디라는 세기의 건축가가 나온 배경 중에는 가우디와 동시대를 살면서 영향을 주고받은 건축가들도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타 델 마르 성당(Santa Maria del Mar)은 14세기 선원들이 그들의 수호신 산타마리아를 모시고 세운 성당이다. 뱃사람들이 출항 전 기도를 올리던 성당이다. 고딕 지구 대성당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언제나 거리를 향해 문이 열려있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대성당 근처 왕의 광장으로 간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에스파냐 왕을 알현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고요한 오후의 늘어진 해는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에 빛을 주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에는 미술관이 많지만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은 피카소 미술관(Museu Picasso)이다. 마드리드의 레니아소피아에서 본 게르니카와 프라도미술관의 피카소 작품들, 피카소의 탄생지 말라가의 피카소 초기 작품들에 이어 바르셀로나에서도 피카소 박물관에 입장하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피카소가 파리에 가기 전 가우디의 전성기 시절에 젊은 예술가로서 왕성히 활동하던 곳이라고 한다. 피카소 박물관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렸던 유년 시대의 습작, 밑그림부터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이 많아 변화하는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명작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피카소만의 재해석으로 그려놓은 연작들은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미술전공일 것 같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갤러리를 오간다. 가끔 마주치는 그 일행의 가이드를 귀동냥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피카소 미술관을 근처 보른지구의 골목을 탐험한다.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그대로 품은 거리이면서도 이 근처는 바르셀로나의 홍대 같은 지역이다. 그릇, 신발, 털실이나 그림, 특이한 옷, 가방 같은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각종 가게들이 넘쳐나 골목을 따라 갤러리가 펼쳐진 것 같다. 사그라다파밀리아를 거쳐 옛 거리인 고딕지구를 걷고 미술관에서 피로해진 다리를 끌고 다시 골목을 걷는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는 당위이겠지만 다수에게 인정 받는 것은 예술가의 영역 밖의 일이다. 그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타고난 천재성 뿐 아니라 시대 조류, 영향을 미치는 경쟁자들,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든 엄청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시시각각 다른 얼굴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무엇을 하고 나서도 할 것이 많고 무엇을 보고 나와도 더 많은 볼거리가 펼쳐진다.

정리=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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