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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낳은 풍경①] “계란반숙 주세요”…“손님 그건 좀…”
-계란값 폭등으로 사회 곳곳 신풍경

-닭 울음소리보다는 서민울음 더 커

-중국집은 볶음밥 당분간 판매 중지

-계란 놓고 고부갈등까지 ‘백태’연출



[헤럴드경제=최원혁 기자] 2017년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가 밝았지만 정작 ‘닭 때문에 힘들어 못살겠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확산되고, 계란 품귀 현상에 계란값이 널뛰기 하면서 ‘금란(金卵)’으로 변하자, 여기저기에서 속출하는 볼멘소리다.

확실한 것은 전국 방방곡곡은 지금 닭 울음소리보다는 서민들의 울음소리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계란대란을 둘러싸고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백태’엔 씁쓸하고도 가슴 싸늘한 여운이 남는다.


금색으로 칠해진 황금계란 이미지. [사진=123RF]

▶“계란 달라” vs “AI 때문에”…식당주인과 실랑이=경기도 여주에 거주하는 계란반숙 마니아인 50대 강모 씨. 사정상 혼자 거주하는 그는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단골 백반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강 씨가 이 백반집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아침 백반에 늘 나오는 계란 반숙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상에는 계란반숙이 올라오지 않았다. 강 씨는 계란 때문에 왔는데 왜 없냐며 식당 업주와 실랑이를 벌였다. 식당업주는 “AI 때문에 계란 공급이 어려워 당분간 제공하기가 힘들다”고 했지만 강 씨는 주변을 아랑곳 않고 계란 반숙을 먹어야 하루 일과가 풀린다며 계속 생떼를 부렸다. 옆의 사람들은 이 광경을 외면했다. 식당 문 앞에는 ‘AI로 당분간 계란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게시돼 있었다.

▶계란이 뭐길래…고부갈등(?)까지=일산에 사는 쌍둥이 엄마 정미정(가명) 씨는 옆동에 사는 시부모님 집에서 가끔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오늘도 저녁을 함께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이번 설명절에 동그랑땡과 산적을 해야 하는데 계란값이 올라 전 부치기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자 명절날 기름냄새가 심하게 베는 전 부치기가 가장 고역이였던 정 씨는 “이번 설에는 그냥 전은 넘어가시죠”라고무심코 한마디 꺼냈다. 다음 상황은 싸늘했다. 시어머니가 “조상께 올리는 제사상에 어떻게 전이 빠질수 있느냐, 비싸더라도 올려야 한다”고 단칼에 잘랐기 때문이다. 정 씨는 ‘설 연휴 시즌은 명절음식 장만 등으로 계란 수요가 평소보다 50~60% 이상 증가하는 시기여서 계란대란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뉴스 내용을 시어머니 앞에서 꺼낼까 하다가 포기했다.

▶삶은 ‘계란’…지금은 계란값 올라 삶은 ‘허덕’=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최지원(여ㆍ45) 씨는 7년동안 아침마다 삶은 계란과 토마토 주스로 식사를 해결하고 출근해왔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계란값이 올라 가래떡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최 씨는 “7년간 유지해 왔던 식생활을 갑자기 바꾸려니 힘들지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당분간은 참고 견뎌 봐야겠다”고 했다.

최 씨는 이번 정부의 수입 계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아무래도 국산은 유통과정이 짧기 때문에 신선하고, 수입계란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만큼 신선도에서 국산에 비해 많이 떨어질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만약 주머니 사정이 좋아진다면 국내산 계란보다 수입 계란 가격이 싸다고 해도 돈을 더 주고서라도 국내산을 구매할 것 같다”고 했다.

계란 반숙 이미지. [사진=123RF]

▶중국집 “볶음밥, 당분간 판매 중지합니다”=유치원생 자녀를 둔 한주희(여ㆍ38) 씨는 방학이라 모처럼 점심때 아이가 좋아하는 게살볶음밥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지만 볶음밥의 ‘볶’자도 구경 못했다. 중국집 사장은 AI여파로 당분간 게살볶음밥을 판매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고, 결국 짜장면에 군만두만 먹고 돌아왔다. 중국집 사장을 원망한 것은 물론 아니다.

중국집 사장은 “나름 장사를 오래 해왔지만 이렇게 계란을 구하기 어려웠던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어 “손님들이 즐겨 드시던 메뉴를 못내놓자 손님들도 한마디씩 하고, 우리도 다른 메뉴를 내놓을까 고민중”이라며 “나라에서 계란 문제 하나 해결 못해서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표했다.

cho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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