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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동네빵집은 통곡한다
“경기도 불황인데, 요즘엔 빵도 팔수록 손해죠. 계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더 올라간다니 죽을 맛입니다.”

서울 상암동. 아파트 단지와 상암 중학교, 각종 학원이 밀집된 동네 어귀에서 3년째 ‘빠띠시에’라는 빵집을 운영하는 최성혁 대표의 한숨은 깊었다.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에 계란이 금(金)란이 되면서 제과ㆍ제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한 판에 4000원대로 공급되던 계란은 이제 1만원을 넘어섰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울고 있다면 동네빵집은 대성통곡에 가깝다.

지난 3일까지 AI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 메추리는 3036만 마리에 이른다. 피해는 산란계(2245만 마리)에 집중됐다. 전국에서 사육 중이던 산란계 가운데 32.9%가 살처분됐다. 정부는 신선란 3만5000t 가량을 수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계란의 품질, 운송 비용, 운송 과정의 손상도는 얼마나 클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뿐더러, 완충비와 운송료가 더해지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수도 있다.

동네빵집 효자상품인 카스테라는 졸지에 애증의 자식으로 전락했다. 원재료의 70%가 계란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마진율은 급감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다. 제일 잘 나가는 빵인만큼 안만들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격을 올릴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최 씨는 답했다. “여기 다 매일 오며가며 얼굴 보고 인사하는 단골밖에 없어요. 계란값 올랐다고 바로 또 올리기도 그렇고…. 그냥 계란값 안정될 때만 기다리는 거죠.”

인심으로 먹고사는 동네 장사에서 가격 인상은 생계와 직결된 문제다.

72g 카스테라를 1600원에 판매하는 최 씨는 궁여지책으로 200g 짜리 고급 카스테라를 내놨다. 예전 같으면 3800원이 적정선이었겠지만 4500원 가격표를 붙였다. 동네빵집에선 ‘비싼’축이라 반응은 시큰둥하다. “요즘은 카스테라 100개, 이런 단체 주문이 들어오면 겁부터 나요. 다른 빵으로 하시면 안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최 씨의 말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55g 계란 하나에 동네빵집 주인에게 지어진 삶의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최 씨는 하소연을 하니 속은 시원하다고 했다. 뒤돌아서는 기자에게 최 씨 아내가 “이거 하나 가지고 가세요”라며 손을 내민다. 그 귀한 카스테라였다.
 

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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