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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김용대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
2016년 한해는 국론분열과 촛불민심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 이후 추진된 창조경제,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사드배치, 한일군사정보교류 등 경제, 외교, 국방, 교육 등 국가 전 분야에 걸쳐서 국민 의견의 불일치를 너무나 생생히 경험하였다. 이러한 국론 분열은 현재 촛불민심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묻혀지고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다시 수면 위로 나올 것이며,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서만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발표된 천경자화백의 미인도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 대한민국 검찰이나 프랑스 전문가들은 모두 매우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을 실시하여 전혀 다른 결과를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전문 감정팀은 단층촬영 기법을 이용하여 수치상으로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0.0002%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검찰은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발표하였는데, 특히 프랑스 감정팀이 사용한 계산식을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 사용했더니 진품일 확률이 4.01% 수준으로 나왔다는 것을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제시하였다.

상충되는 다양한 의견들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결정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통계적 가설검정이 있으며, 약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과 같은 의학 분야나 사교육의 효과에 대한 논란과 같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통계적 가설검정을 간단한 예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동전을 앞면만 던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술사가 있다고 하자. 이 주장을 검증하기 위하여 마술사는 동전을 던진다. 한번 던져서 앞면이 나왔다고 마술사의 주장을 믿지 않겠지만, 10번 던져서 모두 앞면이 나온다면 마술사의 주장은 사실로 받아드려질 것이다. 그 이유는 보통사람이 우연히 한번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은 0,5로 작지 않지만 10번 모두 앞면을 던질 확률은 매우 작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체계적으로 적어보면, 먼저 두 개의 가설이 존재하는데 각각 “마술사는 보통사람이다”와 “마술사의 주장이 맞다”이다. 첫 번째 가설을 귀무가설, 두 번째 가설을 대립가설이라고 한다, 증거 (또는 데이터)를 관측한 후, 귀무가설하에서 증거를 관측할 확률을 계산하고, 이 확률이 아주 작으면 대립가설을, 그렇지 않으면 귀무가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통계적 가설검정의 치명적인 약점은, 상충되는 두 개의 가설 중에서 어떤 가설을 귀무가설로 채택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귀무가설은 통상적인 상황에서 믿고 있는 가설이고, 대립가설은 통상적이지 않은 새로운 가설이다.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점은 통상적인 상황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몇 해 전에 경험했던 송전탑 유해문제에서, 정부는 “송전탑은 유해하지 않다”를, 주민들은 “송전탑은 유해하다”를 귀무가설로 사용할 것이다. 귀무가설이 바뀌면 같은 증거가 주어져도 받아들여지는 가설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송전탑에 대한 정부의 판단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진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의사결정도 매우 어려운데, 잘못되거나 훼손된 증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 최근에 목격되는 우리 사회 최고위층 사람들의 거짓말 행진은 국론분열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한국사회의 미래에 매우 큰 걸림돌이 된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진실한 증거,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거짓말에 대한 사회적 엄벌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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