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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춘추관 기사관의 용기
조선왕조실록에는 ‘고종태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일제침략기 일본인 주도로 편찬된 것으로, 왜곡이 많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실록은 대상 왕이 죽은 뒤, 바로 그 다음 왕 대에 편찬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다음 다음 왕 대에 만들어지는 경우도 꽤 있었다. 선왕의 신하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지어진 헌종, 경종실록 등은 시간이 지나 수정본으로 나오기도 했다.



특히 신임 왕이 선왕의 실록 편찬을 재촉하는 상황 등, 죽은 아버지에 대한 빗나간 효심이 실록의 지나친 미화로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면, 사초(史草) 정리와 편찬 실무는 맡는 기사관(記事官) 등이 차마 못 다 쓴 내용을 행간에라도 은근히 비치도록 반영했다.

형제들을 죽이고 임금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측근을 요직에 심은 뒤 태조실록을 짓도록 명한다. “태조ㆍ정종 역사 편찬을 위한 사초를 제출하라”는 명령이 전국에 하달되자 춘추관의 한 기사관이 정식 이의를 제기한다.

“사기(史記)를 보건대 모두 3대 후에 이뤄졌다. 고려 때에도 그랬다. 벌써 선왕의 실록을 편찬하다니요!”

이 기사관의 바른 말에도 불구하고, 실록편찬은 강행된다. 그런데 이번엔 하달된 마감시간 안에 전국의 사초가 올라오지 않았다. 지방 사관들이 개긴 것이다. 어쨌든 재촉과 압박 속에 태조실록은 완성됐는데, ‘태조’라서 딴지를 크게 걸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이방원이 죽었다. 태종실록(세종13년 편찬)에는 궁에 흉조인 부엉이가 나타나 이방원이 매우 싫어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궁에 부엉이가 나타나는 경우는 다른 임금 때에도 많이 보이는데, 이를 걱정하는 왕의 모습은 태종실록에 집중된다.

기사관들이 대놓고 ‘살육을 통한 등극’을 쓰지 못하니 그렇게 암울한 기운을 넣은 것이다.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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