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프리즘-산업섹션 조문술 차장]촛불민심 그 이후
촛불민심은 순수하다. 그래서 평화와 비폭력이다. 폭넓은 지지가 거기서 나왔다. 계층과 성별, 세대, 지역, 정치성향도 아울렀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차별과 간격을 허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혁명이다.

그동안 촛불은 우리 사회에 많은 신호를 던졌다. 대통령 퇴진과 관련자 엄벌이라는 직접적인 구호는 물론 헌정질서를 바로잡아 반듯한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열망이 담겼다. 법체계와 절차에 의해, 소통과 합의에 의해 이뤄져야 할 공적 통치행위가 불통과 자의에 기댄 사적 통치로 흐른데 대한 분노였다. 그런 나라가 되도록 방치한데 대한 국민으로서의 수치심, 자괴감이었다.

확장해 보면 뿌리깊은 우리 사회의 부패, 특권의식, 갑질, 패거리문화와 같은 전근대성 또는 앙샹레짐을 일소하라는 요구다. 행진은 평화로우면서도 엄중하게 진행됐다.

그랬기에 파리코뮌적 요구도 정치세력화의 유혹도 단호히 거부했다. 단지 안팎에 부끄럽지 않은 반듯한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이며, 만들어가자는 염원이 뭉친 것이다. 그래서 촛불은 하야와 탄핵이라는 1차 목표에 접근함으로써 명예혁명과도 같은 과정으로 진행됐다.

촛불은 깔끔하고도 정연했다. 행진이 끝난 뒤 쓰레기마저 치운 다음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부 세력화가 시도되거나 이념이 개입할라 치면 시민들은 과감하게 선을 그었다. 과격화의 유인이 있는 전문 시위꾼의 발호도 제압됐다. 이를 기회로 우리가 열망해왔던 이상적 시위문화가 정착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불행히도 우리 정치는 여기서 민심의 신호를 읽지 못했다.

정치적 욕망을 가진 이들에게 촛불은 그저 잔칫판이었다. 촛불민심 편승을 넘어 당리당략으로 엮거나 도용하려는 저의도 포착됐다. 또 촛불을 새로운 정치세력화 하려는 시도도 생겨났다. 개헌이냐 아니냐를 두고도 정파별로 입장이 갈렸다. 이후 촛불민심이 파당적으로 해석될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숟가락 얹기 행태도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의 일원이 된 게 아니라 정치적 지지로 아전인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비하면 정치권과 정부의 수준은 한심해진다. 그렇기에 정갈한 시민들의 요구는 언제든 정치권을 향한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목적을 다한 촛불은 이후 사심없이 사그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답해야 한다. 국정개혁과 구습일소, 탕평과 협치, 상호존중 그런 규범을 세워야 한다는 것. 이젠 정치가 답할 차례다. 파당의 우물에서 나와 특권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국익을 위해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달포 넘게 내팽개쳤던 경제도 좀 추스릴 때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 없인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했으며, 또 세계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다. 옥석은 가려야겠지만 구조조정과 국정 중점과제도 중단없이 추진해야 깊은 수렁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본색원, 분골쇄신, 전화위복 3단어다. 함수적으로 각각 적폐, 국가개조, 일류국가에 대응된다. 여기에 촛불의 결기가 더해진다면 위기는 극복되고도 남는다.
 
freiheit@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