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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어느덧 대척점에 선 박근혜와 메르켈
[헤럴드경제=김영화 기자]박근혜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비교 대상에 자주 올라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공계 출신의 여성 국가 수장이라는 점 외에 이렇다할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둘 사이 간극은 더 벌어진 느낌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두 사람의 최근 사진이 나란히 올라와 화제가 됐다. 사진 속 올해 만 64세인 박 대통령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데, 그보다 두 살 어린 메르켈 총리는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일(2014년 4월 15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두고 논란이 일자 일각에선 세월호 사건을 전후해 박 대통령의 눈가 등의 주름이 사라졌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박 대통령 측 변호인 주장대로 대통령도 물론 사생활이 있지만 만약 참사 당일 주름 제거 시술을 받느라 적절한 사고 대처를 못했다는 항간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민들의 용서를 받기 어렵다.

두 사람의 옷입는 성향도 다르다. 평소 수수한 차림을 즐기는 메르켈 총리는 지난 1996년, 2002년, 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같은 옷을 입고 참석한 적도 있다. 현지 일간 ‘빌트’ 지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간 우리 총리, 아름답다! 언제나 참한 메르켈’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반면 박 대통령을 두고 일각에선 ‘패션정치’, ‘패션외교’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유럽 순방 일주일간 그는 무려 16벌을 갈아입어 패션쇼를 방불케 했다. 취임후 일년 새 박 대통령이 공식석 상에서 착용한 옷만 120여 벌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3월 26일 오후(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베를린 연방초리실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메르켈 총리의 설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리더십 성향이다. 박 대통령은 ‘불통’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의 통치 방식을 두고 비밀주의ㆍ독단주의ㆍ권위주의라는 비판이 꼬리를 문다. 얼마전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온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이 과거 11개월 동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면서 한번도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방영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에 머물며 서면보고를 받았다. 이처럼 얼굴을 맞대고 논의하는 것을 기피하는 대통령의 소통 방식이 최순실ㆍ장시호ㆍ차은택 등 비선의 권력형 비리로 귀결됐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비해 메르켈은 소통의 정치, 화합의 정치로 불리는 ‘무티(엄마) 리더십’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국민들에게 ‘무티’라고 불리는 메르켈 총리는 여느 평범한 주부와 다름없이 동네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독일 정계에선 메르켈이 ‘뭐든 먹어치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원전 및 징병제 폐지는 메르켈의 합리적 실용주의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수시로 국민과의 대화를 갖는다. 시리아난민 포용정책이 그 결과물이다. 독일은 연립정부의 역사가 깊은데, 메르켈만해도 사민당과의 연정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일궈낸 정치 안정은 유로존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경제 성과를 가져왔고, 국제 위상을 한층 드높였다.

두 사람의 리더십 차이는 성장 배경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메르켈은 구 동독 시골의 작은 개신교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영어ㆍ라틴어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 발상지인 독일은 기독교의 뿌리가 깊고, 국민 31%가 개신교도다.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는 경제학 고전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년)을 저술,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을 청교도정신에서 찾기도 했다. 기독교 신자인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은 기독교 가치 위에 설립됐다. 그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때론 좌파의 정책을 적극 받아들이고, 난민 수용 정책을 편 것은 기독교적 가치관과 연관돼 있다는 평가다. 영국 공영 BBC는 지난 6월 테레사 메이 총리 부임 당시 그를 메르켈 총리와 비교해 두 사람은 개신교 성직자의 딸이란 공통점이 있다면서 이런 종교적 배경은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반면 박 대통령은 군인 출신 대통령 아버지 밑에서 10∼20대를 큰 어려움 없이 보냈다. 그가 국회의원 시절 시장 상인이 건네준 막대 오뎅(어묵)을 들고 한참 어찌할 바 모르다 놔두고 온 것이 당시 현장 취재진을 통해 세간에 전해지기도 했다. 이른바 ‘오뎅 사건’이다. 독재자 아버지 밑에서 ‘공주마마’ 대접을 받으며 특권적 삶을 누려온 그에게 애당초 서민들의 애환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였을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들끓는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유력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자(현지시간) 온라인판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한국판 클린턴 재단 스캔들’이라 규정하고, “1960∼70년대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로 박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독재자 아버지의 어두운 면(정경유착)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은 대를 이은 윤리적 실책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통합의 아이콘’인 메르켈에 빗대어 박 대통령에겐 ‘분열의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실제 지난해 2월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박 정부가 대선 당시 제시한 674개 공약 중 국민대통합과 관련한 이행률은 ‘0’%였다. 

아직 촛불 집회에 가본 적이 없는 기자는 집회 상황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99%를 위한 대통령을 바라는 건 부질없는 생각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betty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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