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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우리사회에 합리적 보수는 있는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보수의 성찰은 보수라는 개념을 또렷이 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보수는 잇고 지킨다는 뜻이다. 우리처럼 자유로운 사회에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잇고 지키는 태도와 사람들을 가리킨다. ”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 평소 보수주의자를 자처해온 한 정치평론가가 한 말이다. 그는 보수가 지지한 사람이 아닌,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수의 성찰을 촉구했다.

이번 사태로 보수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사회에 진정한 보수가 있는지도 담론화되고 있다.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로저 스크러튼 지음, 박수철 옮김/더퀘스트

이는 비단 우리만의 고민은 아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보수지식인 로저 스크러튼은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원제:How to be a Conservativeㆍ더퀘스트)에서 운신하기 힘든 보수주의자들을 좀비처럼 그려낸다. 가족을 부양하고 공동체 생활을 누리고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소신에 따라 살아가려는 그들의 솔직한 태도는 무시와 조롱을 당하기 십상이어서 변장한 채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로저 스크러튼은 영국에서 ‘그 누구보다 보수주의에 대해 가장 훌륭하게 정의 내리는 인물’로 통한다. 그는 이 책에서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무엇인지 경제, 외교, 환경, 교육, 문화 등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설득력있게 설명해나간다.

책은 ‘나는 어떻게 합리적 보수가 되었나’란 자전적 이야기로 시작한다.

빈민가 출신인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자신의 노동계급적 뿌리를 배신한 것인지 항상 고민하면서도 역사와 건축 등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취했으며, 로저 역시 학창시절엔 권위에 저항했으나 관심의 대상이었던 예술과 문학에서는 위대한 전통이 보존되기를 바랐다며, 우리는 일정 부분 기질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해나간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수는 영국의 전통속에서 발견된다. 에드먼드 버크로 시작되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은 영국에서 하나의 사상적 조류로확립돼 벤저민 디즈데일리를 거쳐 처칠과 마거릿 대처로 그 대표성을 이어오고 있다.

저자가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로 내세운 건 자유와 책임이다. 저자는‘우리 뜻대로 살 수 있는 기회’, ‘고충에 응답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공정한 법의 확실성’, ‘특정 이해 당사자들 마음대로 점유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공유 자산인 환경의 보호’, ‘개방적이고 탐구적인 문화’, ‘대표자를 선출하고 법을 통과시키는 민주적 절차’ 등을 자유의 가치로 열거하며, 이를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지칭한다. 저자에 따르면, 합리적 보수주의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잘 지켜 후대에 물려주려는 신념을 갖는다. 또한 약자를 보호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연대의식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절대 어기지 않는다.

저자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빌려, 이런 자율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힘이 무엇인지 설명해나간다. 버크는 사회가 애정과 충성심의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봤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고 이웃을 배려하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배우는 곳은 가정, 지역 동호회와 단체, 학교, 직장 등이다. 사회가 혁명적 독재정권이나 은밀한 관료제의 비인격적 명령에 의해 하향식으로 조직될 때 사회에서 책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즉 하향식 통치는 무책임한 개인을 양산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보가 내세우는 사회주의가 왜 실현되기 어려운지도 조목조목 따져나간다. 특히 부당한 현실에서 설득력을 발휘하는 ‘제로섬 게임의 오류’를 집중, 조명한다. 제로섬 사고방식은 타인의 성공이 내 실패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 오류에 의하면, 모든 이득은 패자들의 손해를 전제로 한다.자유시장경제에서 한 쪽의 이익이 반드시 다른 한 쪽의 손실을 의미한다면 거래와 계약은 이뤄질 수 었다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제로섬 오류는 평등과 정의가 동일한 개념이라는 광범위한 믿음의 기반”을 형성하며, 오늘날 사회개혁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보수주의 옹호자로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은 현대 비뚤어진 자본주의에도 향한다.

그가 보기에 현대의 자본주의는 이상적인 자유주의시장관과는 거리가 있다. 모든 개인이 행동에 따른 이익을 거둘 뿐 아니라 비용도 부담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비용을 폭넓게 전가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일어나고 있기때문이다.

저자는 “세계 자본주의는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이익을 위해 비용을 부담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작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의 대가를 위해 미래 세대에 비용을 전가하는 일종의 약탈”이라고 비난한다.

그가 제안하는 대안은 새로운 형태의 보수주의다. 즉 “사유재산을 함부로 다루는 자들에 맞서 그것을 기꺼이 수호하려는, 그리고 다음 세대에 비용을 떠넘기는 일 없이 현재 세대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하는 보수주의”다.

책에는 개인, 가치, 관계, 상호작용, 책임 등의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자유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저자의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만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우리가 당연시해온 훌륭한 문화유산의 가치들이 위협받고”있기 때문이라며, “훌륭한 유산을 파괴하는 작업은 빠르고 수월하고 신나지만 창조하는 작업은 느리고 힘들고 지루하다.”는 말로 보수주의에 힘을 실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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