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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보다 아름다운 도시를 걷다…‘로마·피렌체에서의 휴일’
시스틴성당 ‘천지창조’ 보고 또 봐도 ‘신의 선물’

가로수 세번 바뀌는 미켈란젤로 언덕길팅

잘 웃고 유머 풍부한 로마시민들 부러울 뿐

피렌체, 문예부흥 텃밭답게 곳곳 ‘문화의 꽃’ 만발

언덕에 서면 베키오다리·꽃성당등 하나의 예술품



‘로마의 휴일’을 거닐며 다시 진정한 행복의 길을 묻고, 피렌체에서 휴머니즘의 참뜻을 되새긴다.

1955년 어느날, 로마 바르베리니 궁전에서 탈출한 앤 공주(오드리햅번)는 술에 취한 채 포로로마노에 걸터 앉아 귀가중이던 신문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를 향해 “정말 행복해요?”라고 거듭 묻는다. 앤은 트레비 분수 옆 미장원에서 파격적인 단발 컷을 감행하고 스페인광장 쪽으로 향하면서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상트 안젤로 파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본 앤공주는 조와의 농도 짙은 키스를 뒤로 한 채 궁전으로 돌아와 “조국에 대한 책무를 잊고 있었다면 오늘밤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다음날 회견때 앤은 EU공동체에 대해 “인간관계에 믿음이 있듯이, 나는 모든 관계를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속에 드러나는 ‘행복’, ‘하고 싶은 것’, ‘조국에 대한 책무’, ‘믿음’이라는 기호의 함의는 지금의 한국민에게는 멜로를 넘어 지향 가치의 탐구로 확장된다.

로마인의 행복 비결은 웃음과 솔직함, 열정, 친환경, 탈권위, 심미주의에 있다. 국민 기대수명은 OECD국가 4위이고, 남성은 80.3세로 공동 3위이다. 지세웅 가이드는 “이 나라 남성들은 잘 웃고, 아이처럼 놀며, 유머감각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일상에 찌들지 않은 채 명랑하게 사는 것이다.

운전기사 에르네스토 역시 체면과 위신을 의식하지 않은 채 거침없이 즐거움을 표시했고, 전화 수다 떠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성들은 여성을 만나면 애교도 많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독 겸 주연 로베르토 베니니가 전형적인 이 나라 남성상이다. 여성 역시 활달하고 감정표현이 솔직하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촬영지로 알려진 피렌체는 단테의 고향이면서 르네상스를 꽃피운 문예부흥의 도시이기도 하다. 아직도 과학ㆍ음악ㆍ미술ㆍ교육 등 다양한 인문학적 문화가 살아숨쉬고 있다.

로마 근교에 있는 피우지로 호텔 근처에 여장을 풀고 시내쪽으로 5분만 가면 강변 높은 언덕 위에 교황의 하계휴양지 ‘로카 디 파파’가 있다. 이곳은 단순한 교황의 여름별장이 아니다.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가 나서 사제 대표들을 모아놓고 가톨릭교회 개혁을 위한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성직자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길가와 로마 도심 곳곳엔 날씬한 상록수 사이프레스와 우산 깃대 같은 몸체에 가발을 얹은 듯한 우산소나무가 곳곳을 장식한다. 우산소나무는 어릴적 가지치기를 해주면서 예술적 자태로 거듭났다. 곳곳의 사이프레스, 우산소나무 군락은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한다. 피렌체 시내에서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길지 않은데도 플라타너스, 삼나무 등 가로수가 세번 바뀐다. 나무 한그루, 가로수길에도 미학이 스며있다.

건강을 지켜주는 도시의 보존은 철저하다. 로마 남쪽근교 피우지는 교회법 창시자 교황 베네티토 보니파키우스 8세가 이곳 온천수를 마시고 지병을 치유한 웰빙도시이고, 북동쪽 시계를 막 벗어나면 만나는 티볼리는 국내 한 자동차메이커가 글로벌 시승식을 가진 온천휴양도시이다.

열정은 행복의 핵심동력이다. 바티칸시국 내 시스틴 소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인간이 만든 기적의 산물로 꼽힌다. 프레스코 벽화는 석회ㆍ모래ㆍ물감을 벽에 덧칠하고 벽과 함께 물감이 마르도록 하는 고난도 회화이다. 미켈란젤로는 14m 높이에 매달려 4년간 그림을 그렸다. 최근 현대 화가를 초빙해 미켈란젤로 처럼 해봤지만 골병 들게 생겨 중도 포기했다. 미켈란젤로는 ‘내 가슴 속의 불’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솔직하게 시시비비를 말하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더 찾기 위해 열정을 바치는 모습은 로마인의 행복 추구 덕목이다. 트레비분수옆 2.5유로짜리 본젤라또, 스페인광장의 4유로짜리 도시락 크기 뽐삐 티라미수 등의 세계적인 인기 역시 장인 정신, 예술적 마케팅과 무관치 않다.

로마 이냐시오 예수회 성당의 천장화 ‘승천’은 창의성이 돋보인다. 돔을 지을 만한 비용이 없어, 화가 겸 수도사 안드레아 포초는 둥글지 않은 천장에다 돔처럼 보이게 그림을 그리는 ‘콰드라 투라’ 착시 기법을 썼다. 로마의 숨은 보석이다.

로마를 떠나 해발 195m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슬로시티’ 오르비에토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촬영지인 성벽도시 오르떼를 거쳐 차로 2시간쯤 가면 피렌체를 만난다.

다비드 조각상이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굽어 보인다. 아르노강 건너편 산 아래 형성된 도심 중앙에 두오모가 자리하고 왼쪽으로는 히틀러가 패퇴하면서 너무 아름답기에 폭파하지 말라고 했던 베키오다리가, 오른쪽으로는 ‘도심의 허파’강변 숲이 있다. ‘신곡’을 통해 호메로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 영웅을 연옥과 지옥으로 보내면서 암흑의 과거에 이별을 고했던 단테의 고향이자, 르네상스(Renaissance:다시 태어나다)를 꽃 피운 중심도시이다. 꽃의 신 플로라를 섬기는 꽃의 도시이다.


이곳이 인문학, 인본주의, 문화예술 부흥의 텃밭이 된 것은 역사책 기술 처럼 그리 거창하지 않다. 기원전후 카이사르의 갈리아 군단이 주둔하면서 군사도시로 영속하는 듯 했으나, 로마패망 후 군대가 떠나고 오랜 기간 황폐화의 길을 걷던 피렌체는 각국의 로마행 성지순례단이 쉬어가는 곳으로 삼으면서 발전의 기회를 잡는다.

순례자들의 옷은 장기 여행으로 누더기가 됐는데, 주민들은 옷감짜기에 매진해 섬유산업으로 대박을 얻고 유럽 최초의 길드을 만들어 독보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세계 최초의 은행 ‘방꼬(금융상담용 널빤지 책상:Bank의 어원)’를 탄생시킨다. ‘카싸’는 피렌체 금고인데 캐시(현금)와 카지노의 어원이 된다. 로또도 피렌체가 고향이다.

‘돈방석’도시가 된 피렌체의 방꼬가 교황청 자금을 관리하면서 부정부패를 속속들이 꿰뚫었고 시민들 사이에 부패한 교회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돈을 번 메디치 가문 등 상인시민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최초의 도시가 된다.

단테가 권위적 질서와 부조리의 혁파를 향도했다면, 메디치가문은 도시발전을 위해 문화예술인들을 끌어모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문화예술인은 인간중심의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다빈치ㆍ갈릴레이는 과학기술, 푸치니는 음악, 미켈란젤로ㆍ보티첼리는 미술, 페트라르카ㆍ보카치오는 문학, 후세들의 정서함양은 ‘피노키오’의 카를로 콜로디가 이끌었다.

피렌체의 꽃은 인간에 의해 휴머니즘의 토양위에서 만개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피렌체는 말해준다.

모든 것이 협력이었지, 통치자만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로마의 휴일’에서 공주에게 던진 조 기자(그레고리 펙)의 충고가 한국인의 귓전을 때린다. “삶이란 자기 뜻대로 될 수 없다(Life isn’t always what one likes).”

창의성에 기반한 자유로운 소통과 협력, 낡은 인습의 제거와 발상의 전환, 기업의 사회공헌, 문화예술인이 맘 놓고 활동할 환경의 조성, 공동체 중심의 거번넌스…. 한국은 지금 인간 행복을 이끌어낸 르네상스의 덕목을 창의적으로 재구상(Reimagine)할 때이다.

글·사진=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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