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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좌절과 배신감이 낳은 힘의 결집
2016년 11월 12일. 한국 정치의 중심 청와대 인근은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고사리 손으로 촛불을 든 여자 아이부터 교복을 입고 거리를 뛰쳐나온 어린 학생들까지 ‘백만 촛불’은 하나같이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국민은 안중에 없는, 국민을 배반한 대통령은 퇴진하라라는 목소리를 외쳤다. ‘백만 촛불’의 목소리에는 힘없는 시민들의 좌절과 배신감이 묻어 있었다.

좌절과 배신감.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역사상 최대 집회의 근저에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에 있는 이들 감정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사의 나라’ 영국 국민들이 브렉시트라는 무모한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미국인들이 트럼프같은 술주정뱅이를 대통령에 선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견은 모두 빗나갔다.

하지만 퍼즐에서 모두가 빠트린 중요한 조각이 있다. WSJ의 분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많은 전문가들이, 그리고 정치가들이 국민들의 극에 달한 분노와 좌절감을 외면하고 있었다. 브렉시트는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영국인들의 밑바닥에 깔린 감정을 알지 못해서, ‘트럼피즘’은 기득권과 기성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했기 때문에 모두 ‘현실’이 됐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백만 촛불은 그 본질과 이유 모두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해선 안되는 공통점은 소중한 한 표를 통해 권한을 내준 정치권에 대한 배신감과 앵그리(angry)다.

백만 촛불은 경고하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의 목소리를 여론 간보기식으로 무시하지 말라고. 이제라도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행동에 나서기 전 국민들은 의견을 전달하며 기회를 줬다. 현재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정치권이 무엇을 반영해야 하는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마침내 이 모든 것이 정치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확신을 얻자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힘의 행사를 통해 바라만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민심의 힘이 증명되자 또 다른 곳에서 이변의 물결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온다. 안이했던 정치권은 타국의 사례를 목도하고 부랴부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한 번 잡은 권력이 그대로 정체되는 시대는 갔다. 

smstor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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