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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호메로스’와 ‘겨울나그네’를 통해 시대를 엿보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한 편의 시와 노래, 예술은 당연히 그 시대를 반영한다. 대중들은 그 시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노래와 이야기를 두고 두고 입에 올리며 되새김질한다. 그래서 수 천년이 흐른 뒤에도 그 생명은 이어져 역사가 증언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들려주게 된다.

이번 주에 도착한 두 책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와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문학과 음악으로 듣는 역사이야기다.

영국 작가 애덤 니컬슨이 쓴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세종서적)는 아득한 옛날에 지어진 시가 4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탐색한 역작이다.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애덤 니컬슨 지음, 정혜윤 옮김/세종서적

서양에서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 작품이자 서양정신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학생시절, 단지 시험을 위해 알아야 하는 지식에 불과했던 호메로스의 이 시를 저자는 중년의 어느 해, 북대서양에서 험난한 항해를 하다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운명과 인간의 조건에 대해, 그 어떤 책에서도 읽어보지 못했던 손상되지 않은 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10여년간 호메로스에 얽힌 수수께끼와 의미를 밝히기 위해 관련서적을 섭렵하고 호메로스의 자취를 찾아 유럽전역을 탐사해 왜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지를 설득력있게 들려준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 전후에 창작됐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저자는 호메로스 서사시에 들어있는 다양한 언어의 흔적들과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호메로스의 기원은 그보다 더 거대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기원전 2000년 전후 수세기에 걸쳐 생겨난 것으로 본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반(半)유목민적 문화의 특성인 영웅주의 문화가 중심인 세계와 지중해 동부의 중앙집권적이고 체계가 잘 잡힌 세련된 도시문화가 중심인 세계가 만나 초기 그리스 문명이 탄생하던 순간에 생겨난 이야기라는 것이다. 상반된 두 문화의 충돌로 인해 기존의 원칙들이 흔들리면서 생겨난 질문들에 답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개인과 공동체, 국가와 영웅,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인생은 변함없이 무한한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인가, 아니면 그저 찰나적이고 가망 없이 무가치한 것일 뿐인가란 질문에 호메로스는 이야기를 통해 응답한 셈이다.

저자는 ‘오디세이아’를 인생 안내서로 꼽는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에서 실수투성이에다 제멋대로이고 허영덩어리인 인간의 실체를 아는, 그러면서도 고결하고 진실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서사시에 대한 저자의 탁견도 귀기울일 만하다.

그는 “서사시는 무슨 역사 기록물도 아니다”고 전제한 뒤, “서사시는 단순히 기억을 전달하는 행위 이후에 그리고 역사 기술 이전에 발명된 것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제3의 공간을 차지한다”며, “오래전에 만들어진 위대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아름답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데 서사시의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세계 최고의 테너이자 역사학자인 이언 보스트리지의 ‘겨울나그네’(바다출판사)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슈베르트의 마지막 시기 작품으로 독창자와 피아노를 위한 스물네곡의 노래로 이뤄진 연가곡 ‘겨울나그네’의 탁월한 해석서다.

저자는 ‘겨울나그네’는 “셰익스피어와 단테의 시, 고흐와 피카소의 회화, 브론테 자매와 프루스트의 소설에 비견될 만하다”고 극찬한 뒤, 각각의 노래의 역사적 맥락과 예기치 못한 새로운 연관관계들을 보여준다.

‘겨울나그네’는 빌헬름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으로, 저자는 먼저 뮐러의 시를 파고든다. “이방인으로 왔다가/이방인으로 떠나네//(…)사랑은 방황하기글 좋아하지…/신이 그렇게 만들었어…/이곳저곳 떠돌아다니도록…/내 사랑, 이제 안녕!”

제1곡 ‘밤인사’는 조용하고 단조롭게 진행된다. 주인공은 어딘가로 떠나려 하는데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인색한 정보와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뮐러가 바이런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저자는 본다. 뮐러가 연가곡을 썼을 때의 상황도 관련성이 있다. 저자는 나폴레옹 전쟁 후 메테르니히가 통치하던 시대의 소외된 정치에 관한 우화로 이를 해석한다. 즉 당시 독일 민족주의가 된다는 것은 기성 질서에 반하는 것, 권력과 맞서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소외의 경험이었다는 것.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빈 회의를 통해 영토의 절반만 되찾을 수 있던 상황이었다. 이 시기 빈에 살았던 슈베르트와 데사우에 살았던 뮐러는 그야말로 ‘자신의 땅에 사는 외국인’이었다. 이는 주류의 해석과 크게 차이 나는 지점이다.

역사적 상황을 끌어들여 작품을 읽어내는 저자는 독자를 슈베르트 시대로 데리고 간다. 제 10곡 ‘휴식’에서 나그네는 비로소 쉼을 얻는데 장소는 숯꾼의 오두막이다. 슈베르트와 뮐러의 시대는 석탄이 숯을 대체하면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숯꾼은 스러져가는 직업. 저자는 숯꾼의 의미를, 잃어버린 삶의 양식과 급변하는 경제를 환기시키는 존재로 해석한다. 또 하나는 정치적인 것이다. 보스트리지는 숯꾼이 예술가들의 활동이 제한되었던 시대에 활동했던 독립과 자유의 비밀결사 ‘카르보나리’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겨울나그네’를 무대 위에서 자주 불렀던 보스트리지의 역사와 음악, 문학을 오가는 촘촘한 해석이 놀랍다. ‘겨울나그네’ 연주를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더 공감이 간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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